[뉴스 분석] 수사는 누가? 검·경·권익위 암투 그림자

[뉴스 분석] 수사는 누가? 검·경·권익위 암투 그림자

입력 2015-03-25 00:10
수정 2015-03-2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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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국무회의 통과 이후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이하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을 놓고 위헌 및 과잉 입법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 가운데 수사 주체를 둘러싼 논란 역시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수사 주체 문제는 검찰과 경찰, 국민권익위원회 등 관련 정부기관 간 암투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누가 주된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 역시 다르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10월로 예정된 김영란법 시행에 앞서 ‘교통정리’가 시급한 실정이다. 수사 주체에 따른 논란 요인 등을 짚어 봤다.

김진태 검찰총장
김진태 검찰총장


■檢, 수사·처벌 권한 더 집중…표적·과잉 수사 부채질 우려

현행법 체계 아래에서는 김영란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와 처벌 권한 모두를 검찰이 쥐게 된다. 따라서 검찰이 우리 사회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지만, 김영란법이 검찰의 수사권 남용 가능성을 키우는 ‘독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검찰은 금품 수수액이 100만원을 넘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 처벌할 수 있다. 따라서 수사 착수는 물론 혐의 입증, 기소도 이전보다 한층 수월해진다. 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사를 포함하는 ‘공직자’를 비롯해 이들의 배우자까지 약 300만명이 김영란법 적용을 받게 되면서 검찰의 수사 영역도 대폭 확대됐다. 김영란법이 ‘검찰을 미소 짓게 하는 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검찰의 표적·과잉 수사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는 얘기다. 제도적으로 차단할 장치도 마땅치 않다. 검찰은 김영란법 위반 여부가 확실치 않더라도 혐의 입증이 쉽기 때문에 의혹만으로도 수사에 착수할 여지가 크다. 또 그 대상이 공직자들이기 때문에 여야의 정략에 따라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도 적지 않다. 또 언론 등 민간 영역도 포함된 만큼 검찰의 ‘민간 사찰’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란법 입법의 단초가 된 ‘스폰서 검사’ ‘벤츠 여검사’ 사건 등 검찰 내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정작 누가 하느냐는 문제 의식도 커질 수밖에 없다. 박노섭 한림대 법학과 교수는 “검찰권만 더욱 강화돼 모든 공직자가 검찰에 예속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금부터라도 김영란법 시행 이후 검찰의 권한을 어떻게 견제할지에 대해 공동 연구를 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檢 기능 조정해 독주 차단…검·경 수사권 조정 분란 재연 가능성

김영란법 위반자 처벌 주체 논란과 관련해 검찰의 기능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의 수사권을 일부 조정해 이들의 독주를 차단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치권의 암묵적 합의에도 불구, 검·경 간 ‘밥그릇 싸움’이 다시 첨예화될 수 있다.

검찰이 수사·기소권을 독점하는 현 상황에서 김영란법은 검찰의 권한과 입지를 더욱 강화시킬 소지가 크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선 검찰과 경찰의 상하관계를 깨뜨려야 한다. 경찰 비리는 현행대로 검찰이 맡더라도, 적어도 검찰 비리는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같은 별도 수사 기구가 필요 없고, 경찰의 인력 규모를 감안할 때 법 집행에도 큰 무리가 없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도 “일단 ‘수사’라는 파이가 커지기 때문에 김영란법 시행이 검·경 갈등으로 필연적으로 옮겨 가진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노무현 정부는 수사권 조정에 손을 댔지만 검찰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경찰의 내사 사건에 대한 지휘권을 놓고 검·경이 갈등을 겪다 경찰청장이 물러났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분점’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기소와 수사 분리’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어 박근혜 정부는 수사권 조정을 ‘140개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진척은 없는 상태다.

검·경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주민직선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의원은 “미국처럼 검찰과 경찰의 수장을 주민이 직접 뽑아야 검찰과 경찰의 독립성과 정당성이 확보돼 김영란법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다”면서 “조만간 주민직선제 도입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검찰 밖 검찰’로 힘의 균형…공수처 등 독립기관 필요

‘검찰 밖 검찰’ 조직을 신설해 김영란법 위반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 권력에 대한 ‘힘의 균형’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반발은 물론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독립된 수사기구인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문제는 검찰의 수사권 남용이나 자의적인 법 집행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핵심이다. 검찰 조직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도 가능하다.

서강대 임지봉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과잉 수사, 표적 수사 논란이 여전한 상황에서 김영란법 위반자에 대한 법 집행을 검찰에 전적으로 맡기기에는 시기상조”라면서 “법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공수처와 같은 독립 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수처 신설은 해묵은 과제에 가깝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1년 부패방지법 제정 과정에서 공직자 비리 척결을 위해 공수처 신설 문제가 처음 거론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검찰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아들을 내쫓고 양자를 들이는 것”이라는 논리로 반대했고, 결국 유야무야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이재오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검찰 외) 별도 사정기관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힘을 얻지 못했다. ‘옥상옥’(屋上屋) 구조가 될 수 있다는 반대 논리도 만만찮았다. 공수처 신설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정치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대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공수처 신설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감찰관제와 상설특검제를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야당이 특별감찰관의 감시를 받지 않는 사각지대를 공수처를 통해 메워야 한다고 요구할 경우 여당과의 신경전으로 번질 수 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권익위, 접수·수사 이첩 등 막강 재수사 요구도…사법권 없어 한계

김영란법이 시행될 경우 처벌 주체로서 국민권익위원회의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권익위의 기존 위상을 감안하면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권익위는 위반 사례에 대한 신고 접수와 기초 조사는 물론, 검찰·경찰·감사원 등 조사기관에 대한 이첩까지 맡는다. 조사기관의 조사가 불충분할 경우 재수사도 요구할 수 있다.

법안만 놓고 보면 권익위가 검찰이나 경찰 못지않는 사정기관이자 권력기관이 된다. 활동 영역이 입법·사법·행정부는 물론 민간 부문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헌법기관인 감사원조차 갖지 못한 권력을 갖는다.

당초 법안에는 권익위가 위반자에게 과태료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었지만, 그나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과태료 부과 주체가 법원으로 바뀌었다. 법안이 원래대로 통과됐다면 권익위가 행정권은 물론 일부 사법권까지 행사할 수 있었다.

권익위의 역할을 감안하면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지적이다. 권익위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고충처리위와 국가청렴위, 행정심판위를 통폐합해 만든 국무총리 산하 행정위원회다. 국민신문고를 운영하는 등 정부를 대표하는 민원처리 기관이다. 권익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위상을 바꿔 해결할 문제도 아니다. 금융위나 공정거래위 등은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관이지만 실제 운영은 ‘독임제 장관’ 체제로 운영돼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처럼 만들려면 김영란법 때문에 헌법을 고치는 ‘주객전도’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고려대 하태훈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은 없다”면서 “권익위에 단속권한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2015-03-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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