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수출 주력’ 반도체 관세 곧 발표
의약품 1년~1년 반 유예기간 둘 듯
관세·방위비 ‘원스톱 쇼핑’ 노림수
협상 더딜 시 미군 감축 압박할 수도
정부 “방위비 협정 준수” 대응 피해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美공화당 상원의원 만난 통상본부장
관세 협상을 위해 방미 중인 여한구(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댄 설리번(공화당·알래스카) 상원의원과 면담하고 있다. 산업부는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의 안정적 경영 환경 조성을 위한 지원을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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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거론하며 한국이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 7600억원)의 방위비를 지출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전날 이재명 대통령에게 다음달 1일부터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는 서한을 보낸 지 하루 만에 방위비까지 언급하며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한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조기 개최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관세와 방위비를 패키지로 받아내려는 ‘원스톱 쇼핑’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맞대응을 피하면서 한미가 이미 체결한 방위비 협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국은 부유한 나라지만 군사비(주한미군 주둔비)로 매우 적은 금액을 내고 있다”며 “자국의 방위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한국에 ‘1년에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그들은 30억 달러(4조 1200억원) 인상에 동의했다”며 “하지만 조작된 선거(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20년 미국 대선)로 인해 논의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특유의 과장이 담겼거나 일부 사실과 다른 것이다. 그는 집권 1기 시절인 2019년 한국에 방위비를 당시 환율로 5조 7000억원에 이르는 50억 달러로 인상할 것을 요구했다. 그해 한국이 낸 분담금(1조 389억원)의 5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이에 한미는 합의에 실패했고 이듬해 바이든 전 대통령이 집권한 뒤 타결을 이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유세 당시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으로 부르며 “내가 백악관에 있었다면 한국은 (방위비로) 연간 100억 달러를 지출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2만 8000명인 주한미군도 4만 5000명으로 잘못 언급했다.
한국의 올해 방위비는 1조 4028억원이며, 지난해 타결된 제12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따라 내년은 1조 5192억원으로 결정됐다. 이후 2030년까지 매년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상한선 5%)과 연동해 방위비 분담금이 인상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100억 달러’는 지금보다 9배 이상 많은 규모다. 외교부는 “SMA는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보장 및 한미 연합방위태세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유효하게 타결되고 발효된 제12차 SMA를 준수하며 이행을 다해 나간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언급하다 갑자기 나왔다. 한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방위비를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미가 조속한 한미 정상회담 개최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이라 트럼프 대통령이 미리 ‘청구서’를 내밀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지난 6일 한미 정상회담 조율 등을 위해 워싱턴DC를 방문한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귀국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협상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감축 등 추가 압박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해외 주둔 미군의 유지비 부담을 늘리지 않을 경우 철수를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5월 “미군이 주한미군 4500명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다만 미 국방부는 이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숀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주한미군 감축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미국과 한국은 철통같은 동맹을 맺고 있다”고만 답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구리(50%)와 의약품(200%)에 대한 품목별 관세도 새로 예고했다. 구리 관세 발효 시점은 이달 말 또는 다음달 1일이 될 가능성이 크고 의약품은 1년에서 1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둘 것이라고 했다. 외국에 있는 제약사들이 미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에 대한 관세도 곧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5-07-1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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