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방위비 너무 적게 낸다”고 지적한 트럼프의 진짜 속내는
100억 달러 요구, 내년 분담금 9배한미, 5년 주기로 SMA 체결 반복
작년 12차 협상서 8.3% 증액 합의
韓근로자 인건비·군수지원용 제한
과장된 액수는 트럼프식 협상 기술
나토처럼 GDP 5% 증액 압박이자
주한미군 감축·역할 재조정 의도
비용 늘리되 대북 억지력 받아내야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만은 상당히 오랜 기간 이어져 왔다. 특히 지난 대선 때부턴 “한국이 너무 적은 돈을 내고 있다”며 분담금 100억 달러(약 13조 7000억원)를 거듭 거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치에 의미를 두기보단 큰 틀에서 안보 부담을 늘리라는 압박이라고 분석한다.
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 가운데 한국이 나눠 내는 비용을 의미한다. 애초 한미 주둔군지휘협정(SOFA) 5조는 한국이 시설과 부지를 무상으로 미국에 제공하고 미국은 주한미군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예외 조항 성격으로 양국 정부는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을 체결해 왔다. 1990년대 들어 미국이 우리 측에도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면서다.
이후 한미 양국은 5년 주기로 SMA를 체결했고 국방비 인상률이나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연동해 매년 분담금을 늘려 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 막바지인 지난해 11월 제12차 SMA를 체결하며 내년도 방위비 분담금 총액을 올해보다 8.3% 늘린 1조 5192억원으로 정했다. 이후 해마다 CPI(평균 2%대)를 적용해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의 인건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캠프 정비 등 군사시설 건설비와 장비 수송·유지·보수 등의 군수지원비로 쓰도록 제한된다. 사용처와 비율을 정해 놓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현재 틀 안에서는 분담금 인상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 측이 공개하진 않지만 이미 부담한 분담금을 집행하지 않고 쌓아 둔 것만 1조원이 넘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 이런 상황에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도 합의 금액에 9배 수준인 ‘100억 달러’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SMA의 틀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만약 한국이 부담하는 항목을 늘리려면 이 틀을 아예 바꿔야 한다. 외교가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전략자산 전개 비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시절인 2019년 11차 SMA 당시 한국 밖의 미군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될 때마다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만약 이 항목이 신설된다면 미국 항공모함이 국내에 입항하거나, ‘죽음의 백조’ B-1B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에 전개될 때 비용을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100억 달러’ 발언이 SMA에만 한정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 분담금과 국방비 인상 등이 혼재됐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비현실적인 숫자를 제시해 주한미군 감축 및 역할 재조정 등 이른바 ‘동맹 현대화’ 구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미국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비롯해 아시아 동맹국들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100억 달러’는 일종의 정치적 수사로 터무니없이 높은 액수를 베팅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는 고도의 협상 기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비롯해 주둔 자체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더이상 ‘안보 청구서’ 압박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나토처럼 2035년까지 국방비를 올리겠다는 식의 장기적 과제로 숫자를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는 결국 중국 견제에 한국이 얼마나 동참할 것이냐에 있으니 그에 대한 방안도 구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트럼프 정부 입장에선 주한미군의 역할 자체가 더 중요한 상황”이라며 “선제적으로 대중 전략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당장 관세 협상과 방위비분담금 문제는 별개의 사안인 데다 이미 지난해 국회 비준까지 마무리한 12차 SMA가 있어 방위비분담금 협의가 시급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 분위기다. 다만 결국 ‘동맹 현대화’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사에 따라 안보 분야에서 다양하게 협의가 진행될 것이며, 그런 차원에서 큰 틀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센터장은 “주한미군 운용과 관련해 필요에 따라 추가 인원을 고용하거나 시설 건설, 또는 한미 연합연습 및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별건으로 하는 등 안보 비용을 늘리되 주한미군 감축을 하지 않고 현 수준을 유지하며 대북 억지력과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한 대비를 강화한다는 약속을 받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07-1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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