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수 섭씨 25도 이상이면 개발 허용… 기준 너무 낮아
경북 상주시가 관내에 온천 관광지 조성사업을 추진하자 인접해 있는 충북 괴산군이 반발하면서 지자체간 기싸움이 팽팽히 전개되고 있다. 법정 싸움으로까지 비화된 온천개발 논란은 30여년 동안이나 지속되고 있다. 온천관광 휴양지 개발지주조합은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와 중벌리 일대 95만 6000㎡에 온천 개발과 함께 호텔과 상가 등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경북도가 1985년 온천지구로 지정했고, 이어 문화체육관광부가 1987년 관광지 예정부지로 지정한 곳이다. 하지만 온천관광지 조성사업은 이후 대법원으로부터 허가처분 취소 확정 판결과 승소 판결까지 받았다. 잠잠하던 불씨는 최근 개발지주조합이 온천 개발사업을 재추진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면서 재점화됐다. 현장을 찾아가 문제가 되고 있는 논란의 쟁점들을 취재했다.
법정 싸움으로까지 비화된 문장대온천 관광지 조성사업 현장. 주변이 파헤쳐져 방치되고, 온천개발 사무실로 사용하던 낡은 콘크리트 건물도 폐허로 변해 흉물처럼 서 있다. 작은 사진은 괴산군 청천면 도로변에 내걸린 온천개발 반대 현수막.
지난 주말 정부세종청사에서 출발, 상주시 화북면 온천지구 개발 현장을 찾았다. 현지 환경단체 관계자와 현지 주민들의 안내로 온천수가 나온다는 곳부터 둘러보았다. 산속 야트막한 개울가 옹달샘에서 온천수가 흘러 나오는데 손을 넣어봤더니 미지근한 정도로 온기를 느낄 뿐이다. 온천수가 나오는 곳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는 개발 당시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과 함께 주변은 온통 파헤쳐진 채 방치돼 있었다. 뒤편으로는 속리산국립공원 문장대 등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동행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잘못된 온천법 때문에 곳곳의 자연환경을 망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 온천법에 따르면 “‘섭씨 25도 이상의 지하수로, 인체에 해롭지 않으면 온천’으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온천수의 가이드라인이 너무 낮게 설정돼 있다”고 성토했다. 현행법은 미지근한 물이라도 보호지구로 지정받으면 지하수 보전구역 안이라고 해도 온천 개발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또한 온천법 개정을 통해 시장·군수가 반대하더라도 개발업자가 온천개발 계획을 직접 시·도지사에게 제출할 수 있도록 완화됐다.

땅속 시추관을 통해 분출되는 문장대 온천수.
주민들은 “잠잠하나 싶더니 2년 6개월여 만에 다시 온천개발 사업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면서 “대법원 승소 판결 때 손해배상 청구를 안 했던 것이 화근이 됐다”고 자책했다. 아울러 문장대 온천 관광지가 개발될 경우 신월천 물을 바로 식수로 사용하는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 상신리, 신월리 등과 달천을 상수원으로 하는 괴산, 충주 일대 주민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온천개발저지 주민대책위 박관서 위원장은 “두 차례나 법원 판결로 취소된 사안을 재차 개발하려는 의도를 모르겠다”면서 “온천개발이 이뤄진다면 폐수로 인해 아름다운 하천과 주변환경이 모두 망가져 삶의 터전도 위협받게 된다”고 성토했다.
최지영 개발지주조합 전무는 “법정 패소 원인이었던 오수처리 공법을 보완해 개발하면 현장견학 등을 통해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다”면서 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온천개발 예정지 토지 소유자들은 모두 75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인천·부산 등 대부분 대도시 사람들 소유였고, 호주 등 해외 거주자의 이름도 있었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온천 개발 예정지로 부각되면서 오래전에 투자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토지 소유주들은 당연히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개발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온천개발에 대해 상주시 화북면과 괴산군 청천면 주민들은 감정의 골까지 깊게 패였다. 청천면 주민들은 도로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고 온천개발 저지운동에 돌입했다. 반면 지주조합 측은 괴산군에는 많은 식당과 유흥시설이 있는데 식수원 오염문제를 거론하지 않다가 온천개발로 오염 운운하는 것은 지역 이기주의라고 비난했다. 온천개발 주체와 이를 저지하려는 주민들 간 싸움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글 사진 괴산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2013-05-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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