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신뢰 부족 탓”…“수사에는 큰 영향 없어”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동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퍼지며 공분을 일으키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업신여기며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영상 속 인물을 보며 누리꾼들은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저런 짓을 할 수 있냐”며 손가락질하며 강력한 처벌을 촉구한다.
하지만 막상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들 동영상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악마의 편집’인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10일 경기도 양주시 지하철 1호선 양주역을 배경으로 한 동영상 하나가 SNS를 달궜다.
약 1분 30초 분량의 영상에는 한 중년 남성이 한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를 마구 때리는 장면이 담겼다. 피해 외국인은 미얀마 출신으로, 팔을 휘젓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저항을 못 하고 맞기만 하다 결국 입에서 피가 터졌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별 이유 없이 외국인 노동자라는 사회적 약자에게 분풀이하는 이 중년 남성의 비겁함을 질타했다. 일부에서는 ‘(피해자가) 백인이라면 저랬을까’라며 인종차별 문제도 제기했다.
하지만, 경찰이 파악한 사실은 조금 달랐다. 인근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일방적 폭력이라기보다는 서로 주먹을 휘두른 쌍방폭행에 가까웠다. 또, 가해자로 몰려 자수한 A(50)씨의 진술에 의하면 지하철 안에서부터 반말로 시비가 일어났고, 사과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흔히 발생하는 시비와 쌍방 사건 쪽에 가까운 사안인 셈이다. 그러나 피해자 측이 SNS에 올린 문제의 동영상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A씨를 때리는 장면은 없었다.
지난 5월 양주시의 한 지하 주차장에서 녹화돼 공개된 영상은 더 교묘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한 남성이 여성을 힘으로 제압하고 마구 때린다. 여기에는 여성의 아이가 옆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모습도 담겼다.
이 여성은 영상과 함께 인터넷에 “외제차를 타던 남성이 나에게 쓰레기 같은 국산차나 탄다고 무시하며 폭행을 가했다”고 주장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네티즌들은 이 남성을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가난한 이들을 멸시하는 ‘안하무인’의 부자로 여기고 비난했다.
검찰은 애초 이 사건을 쌍방 폭행으로 약식 기소했다가 영상이 논란이 되자 법원의 약식명령 전에 사건을 정식 재판에 넘겨 다시 살피도록 하는 ‘통상 회부’ 여부를 검토했다.
그러나 결국 재검토 결과 통상 회부 대상은 아닌 것으로 결론 났다. 사건 전체를 담은 ‘풀버전’영상이 중요한 지표가 됐다.
전체 영상에서는 해당 남성 못지않게 여성도 격렬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담겼다. SNS에 유포된 영상에는 없는 장면이었다. 또, 초기 경찰 조사때 ‘국산차 타는 주제에’라며 무시한 내용은 없었던 점도 확인됐다.
이런 ‘여론몰이’의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당사자가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달 경기도 안양시의 한 마트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는 조모(37·뇌병변장애 5급)씨가 계산원 A(43ㆍ여)씨의 머리를 두 차례 때리는 영상이 SNS상에 공개됐다.
영상과 함께 A씨의 가족이 쓴 “남자분이 어머니 몸을 만지고,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만져서 어머니가 직원분들께 말씀드리려 하자 태도가 돌변해 욕하고 막대하셨다고 한다”는 글이 떠돌며 네티즌의 공분을 일으켰다. 심지어 조씨의 신상을 털어 욕설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결과 성추행 혐의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오히려 페이스북에 허위 사실을 올린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로 A씨와 딸을 입건했다.
이런 영상 조작을 통한 ‘여론몰이’의 배경 중 하나로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팽배한 불신을 꼽는다.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유홍식 교수는 17일 “결국 사회적 신뢰가 부족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사건의 당사자가 됐을 때 정상적인 사법 시스템에서는 억울한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불신이 팽배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본다”면서 “믿음이 안 가는 사회적 시스템 대신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파급력도 큰 SNS를 이용해 여론몰이하면 유리하다는 판단에 이런 행동을 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왜곡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여론몰이’가 성과를 거두는 경우는 드물다.
경찰 관계자는 “자극적 영상을 올려 여론몰이를 하면 수사상 자신에게 유리할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지만 수사는 어차피 모든 증거를 토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왜곡된 영상으로 발생한 여론에 대해 경찰이 오해를 사지 않도록 세심하게 해명해야 하고,수사 결과를 발표해도 잘 믿지 않아 부담스럽다”며 “최근에는 오해를 피하고자 각종 누리집에도 수사 담당자가 직접 해명의 글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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