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사업 대상에 포함…”보존해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을”
인천의 대표적 원도심인 부평구 부평공원 사거리에서 부평2동쪽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낡은 지붕과 벽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집 80여 채가 있다.집 한 채의 너비가 2m 남짓으로 성인 두세 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크기다.
칠이 벗겨진 벽에는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으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장이 곳곳에 나붙었다.
이 집들은 1938년 일제가 부평에 일본군 군수물자 보급 공장인 ‘육군 조병창’을 세울 때 지은 공장 노동자들의 옛 합숙소다.
당시 일본 광산기계 제작회사인 히로나카상공이 부평 공장과 함께 합숙소를 지었지만 회사 형편이 어려워지자 1942년 미쓰비시 중공업에 공장과 합숙소를 넘겼다.
합숙소는 집 87채가 줄지어 있다고 해 ‘미쓰비시 줄사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좁은 줄사택에는 일본의 강제징용과 징병을 피해 조병창 하청 공장에 취업한 조선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다.
이들은 변변한 세면 공간이나 화장실도 마련되지 않은 사택에서 먹고 자며 전쟁에 쓸 군수품과 무기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했다.
해방 이후인 1950년대 공장 노동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우리 정부가 개인에게 토지를 불하하면서 줄사택은 원형의 5분의 1만 남았다.
이마저도 곧 철거돼 70년 역사가 사라질 운명이다.
지난 3월 도시재생사업의 일종인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 프로젝트’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모한 사업으로 주거 취약지역 주민 삶의 질을 높이려는 목적이다.
부평구는 2018년까지 국·시비 45억원을 지원받아 줄사택 일대 7천700㎡의 빈집과 못 쓰는 집을 사들여 공중화장실, 소규모 임대주택 등을 지을 계획이다.
현재 줄사택 87채 중 70여 채가 빈 상태여서 사택 대부분이 철거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일본 미쓰비시가 2차 세계대전 기간 강제노역을 한 한국인 징용 피해자에게 마땅한 보상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제강점기의 유적인 줄사택을 개발하는 게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 김선호 대표는 “학계에서는 식민지 역사를 되새길 수 있도록 육군 조병창 등을 보존하고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지적했다.
부평역사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지역사를 보존한다는 의미로 미쓰비시 줄사택을 실물 그대로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0이곳과 마찬가지로 일제시대 강제노역자들의 숙소였던 산곡동 근로자 주택에 대한 연구도 진행해 지난 2월 관련 내용을 담은 학술 총서를 펴내기도 했다.
부평동 주민들도 지자체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부평2동에서 5년 넘게 살았다는 이모(43)씨는 “무작정 철거하기보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평구는 5일 미쓰비시 줄사택 구역에 대한 ‘마스터플랜 용역’ 입찰 공고를 냈다. 이 용역을 통해 줄사택 일대 개발 방향에 대한 기본계획을 세우게 된다.
부평구 관계자는 “줄사택 가운데 공·폐가는 위험 요소가 많은 탓에 일단 구에서 매입할 계획”이라며 “주민들과 줄사택 면적을 얼마나 보존할지 지속적으로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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