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컵라면 하나 먹고 새벽까지”…갈수록 피로 누적국립중앙의료원 “충분한 인력·상급병원 조직적 지원 필요”
“오후에 컵라면을 먹고 새벽 3시까지 일하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달째 집에 못 간 동료가 있을 정도로 다들 심신이 지치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상태입니다.”메르스 중앙거점병원으로 지정된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달 20일 첫 환자를 받은 후 한 달째 메르스와 끝없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의료진들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있다.
19일 찾아간 국립의료원은 외래 환자를 받지 않고 메르스 환자 19명만을 전담으로 치료중인 만큼 한산하고 고요했다.
하지만 정문과 후문에서 마스크와 장갑으로 무장한 간호사들이 일일이 방문객들의 체온과 신분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며 이 곳이 메르스 퇴치의 최일선 현장임이 실감 났다.
국립의료원이 마련한 25개의 음압병실에는 현재 12명의 확진 환자와 7명의 의심환자가 입원해 있다. 이 중 2명은 상태가 호전돼 이날 퇴원할 예정이다.
지난달 20일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옮겨진 메르스 첫 환자는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에서 치료받고 있다.
의료진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5층 음압병실에서는 투명한 이중 유리문 너머로 한 명의 환자가 보호복 입은 간호사의 치료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의료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막힌 보호복을 입고 병실에 입장한다. 오염될 가능성이 가장 큰 장갑과 덧신은 이중으로 착용한다.
환자에게 기관 삽관을 한다든지 가래를 뽑아내는 시술을 할 때는 감염 위험이 있어 전동식 호흡장치를 장착하고 환자를 진료한다.
한 번 오염된 보호복은 바로 폐기한다.
보호복은 무겁고 갑갑해 한 번에 최대 3시간 정도밖에 착용하지 못한다고 병원측이 전했다.
제대로 쉬지 못해 체력이 방전된 상태에서 보호복을 장시간 착용하다가 탈수 증세로 쓰러진 간호사도 있다.
신수영 수간호사는 “집에 한 달째 가지 못한 동료가 있을 정도로 다들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해 과로가 우려된다”며 “충분한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해야 하는 일이니 열심히 업무에 임하고 있지만, 감염은 의료진도 당연히 두렵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처럼 피로를 참아가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병원이 ‘감염의 온상’이라는 주변의 인식과 부족한 지원 때문에 어려움은 배가 된다.
정은숙 수간호사는 “아기 엄마인 간호사들은 아이가 걱정돼 집에도 안 가는데 아이들이 엄마가 병원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해 힘들다고 하더라”며 “의료진이야말로 감염되지 않도록 누구보다 조심하는 상황인데도 외부에서는 ‘감염덩어리’로 보니 더 지친다”고 토로했다.
안명옥 원장은 “중앙 혹은 지역 거점 병원으로 지정된 공공보건의료기관 수준이 상급병원에 미치지 못할 때가 있다”며 “상급 종합병원들이 나서서 인력과 체외막산소화장치(에크모) 등 공공보건의료기관에 부족한 부분을 조직적으로 지원해주셨으면 한다”고 바랐다.
국립의료원은 음압 병실이 모자랄 때를 대비해 야외에 이동식 음압텐트병동 6개를 설치해놨다.
본원 병실이 다 차지 않아 아직 비어 있지만, 병상·화장실·폐기물처리통 등이 설치돼 있는 등 일반 병실과 똑같이 꾸며져 있어 환자를 당장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하지만 의료진의 바람은 이 텐트들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환자가 더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환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와 보건당국이 구조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며 “메르스가 잡힌다고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더 큰 전염병이 들어왔을 때 확실히 차단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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