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입맛 다시지만 아무나 따낼 수 없는 한전 공사한전, 뒷돈 134억원 오간 입찰 조작 몰랐나
‘국가 대표 공기업’을 자처하는 한전 전기공사 입찰 과정에 10년간 뚫려있던 구멍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광주지검 특수부(김종범 부장검사)는 16일 낙찰가 등을 알려줘 특정 업체가 공사를 따낼수 있도록 하고 뒷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 처벌법상 사기·배임수재 등)로 박모(40)씨 등 한전KDN에 파견된 정보통신 업체 직원 4명을 구속 기소했다.
불법 낙찰에 관여하고 돈을 준 업자 2명도 구속 기소됐다.
입찰시스템 서버 조작으로 133건, 2천709억원 상당의 공사에서 낙찰업체가 불법적으로 선정됐으며 파견업체 직원들은 그 대가로 134억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 공사 입찰 흐름
한전은 각종 전기공사 중 적격심사제 방식에 따른 전자입찰에서 기초금액과 예비가격 범위(±2.5%) 등 기본 사항을 적어 공고한다.
투찰 마감 하루 전 오후 4시께 기초금액의 ±2.5% 범위에서 1천365개의 예비가격을 만들어 이 가운데 15개를 임의로 선택, 암호화한 뒤 15개 추첨번호에 하나씩 배정한다.
입찰자는 15개 중 4개의 추첨번호를 선택하고 입찰자가 가장 많이 선택한 추첨번호 4개에 배정된 예가를 평균해 공사 예정가격을 산출한 뒤 투찰률(공사액 10억원 미만 87.745%, 10억~30억원 86.745%)을 곱한 낙찰 하한가를 산정한다.
낙찰 하한가와 가장 근접해 그 이상 투찰가를 입력한 입찰자가 최종 낙찰되는 방식이다.
최저가 낙찰 제도에서 성수대교 붕괴 등 사고 이후 최적가 낙찰 제도로 바뀌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 수백~수천대 1 경쟁률 무색…일부 업체 독식 배경은
복잡한 제도는 무용지물이었다. 파견업체 직원들은 15개 추첨번호를 무작위가 아니라 정해진 순서대로 배정되도록 순열을 조정했다.
2주 이상 진행되는 입찰기간 업체들이 선택하는 추첨번호 4개도 실시간으로 파악해 낙찰 하한가를 예측했다.
직원들은 ‘예측 프로그램’뿐 아니라 외부에서 실시간으로 한전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파일도 개발했다.
미리 알아낸 낙찰 하한가는 전기공사 업체로 넘어갔고 답을 알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업체들은 무난히 낙찰을 받았다.
범행은 10년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된 파견업체 직원 박모(40)씨와 업체 사이에서 모집책 역할을 한 전기공사 업자 주모(40)씨의 공모로 시작됐다.
박씨는 한전KDN과 계약이 만료돼 더 근무할 수 없게 되면 후임자를 물색해 수법을 전수해 범행을 이어갔다.
범행은 갈수록 대담해져 초기 공사대금의 1%였던 커미션은 최근에는 10%까지 올랐다.
파견 직원 4명이 받은 뒷돈 총액은 모두 134억원. 체포 당시 금고에 4억1천500만원을 보관하거나 사무실에 수백장의 현금 띠지를 모아둔 경우도 있었다.
가담자들은 고급 아파트, 외제차는 물론 오피스텔 35채를 보유하기도 했다.
업자들로서도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다. 전기공사는 규모가 크고 마진율이 높으며 특정 공구의 단가공사를 낙찰받으면 2년간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전단가 공사는 천정부지의 경쟁률을 기록해 최고 5763대 1인 공사도 있었다.
◇ 뇌물 비리 이어 대규모 입찰 비리…한전, 관리는 하나
검찰이 제보를 입수한 계기는 지난해 11월 수십억원대 광주·전남 배전단가 공사 입찰이었다.
300~1천대 1의 치열한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몇몇 업체가 공사를 독식한다는 불만이 새나왔다.
역설적으로 한전이 검찰의 귀에 흘러가는 동안 불법 행위를 몰랐을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자 앞으로 검찰 수사의 관건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설사 한전 측이 비리를 몰랐더라도 부실한 관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전은 입찰시스템 관리를 위해 한전KDN을 자회사로 설립해 유지·보수 업무를 위탁했고 한전KDN으로 파견된 업체 직원들은 아무 제한없이 한전 입찰시스템에 접근, 조작할 수 있었다.
내부 조작은 외부인의 침투에 의한 범죄보다 훨씬 손쉽고 위험성이 큰데도 한전 측은 통제시스템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고 검찰은 지적했다.
더욱이 파견 직원 퇴사시 전임자의 추천만으로 후임자가 채용되는 관리상의 허점이 드러났다.
한전은 이와 관련,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전산입찰 시스템 비위행위 의혹과 관련된 민원을 파악하고 지난해 11월 내부 점검과 감사를 진행하고 모두 26만건의 시스템을 점검, KDN 재위탁 업체 작업자의 작업내용에서 이상징후를 발견했다”며 “즉시 광주지검에 수사를 의뢰하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각종 개선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한전은 입찰 비리 외에도 나주지사 전·현 직원들이 업자들에게 월급을 받다시피 뇌물을 챙긴 사실도 적발됐다.
이와 관련 한전 직원 7명(구속 5명), 업자 6명(구속 4명)이 기소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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