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행’ vs ‘저지’ 맞선 송전탑 공사 현장

<르포> ‘강행’ vs ‘저지’ 맞선 송전탑 공사 현장

입력 2013-05-20 00:00
수정 2013-05-2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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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목숨걸고 막을 것”…한전 “연말까지 완료해야”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공사를 막아낼 겁니다.”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원전 3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로 보내려고 한전이 건설하려는 161기의 송전탑 가운데 89번 송전탑이 들어설 경남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뒷산 정상에서는 20일 한전과 반대 주민들이 격렬하게 대치했다.

한전이 8개월 만에 공사를 재개한 이날 70∼80대 할머니들이 송전탑 공사장으로 가는 길바닥에 드러누워 공사 자재를 가득 실은 굴착기의 진입을 막았다.

송전탑 공사장에서는 한 70대 주민이 8개월 전에 시동이 꺼진 채 놓여 있는 굴착기 아래 들어가서 “절대 공사는 못한다”며 버텼다.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주민 김태연(62·밀양 단장면 사연리) 씨는 “우리가 가진 힘이라고는 목숨 내놓는 것밖에 없다”며 “온몸으로 공사를 막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단장면 동화전 마을 양윤기(65) 이장은 “거동이 불편한 70∼80대 고령자들이 야산에 올라 장시간 숨을 헐떡이며 시위를 벌이고 있어 혹시 변이라도 당할까 봐 애를 태우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잘려나간 공사현장에서는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측과 한전 측이 공사 재개를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김준한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 공동대표는 “지금까지 그래 왔지만 성실하게 대화로 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며 “단 한 명의 어르신도 작은 상처라도 입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가능하면 대화로 푸는 방법을 계속해서 모색하고 제안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는 의사·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한전 119재난구조단이 주민들을 돌보기도 했다.

한 주민은 “민간단체에서 자원봉사를 온 줄 알았는데 한전에서 보낸 인력이라면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는 것 아니냐”며 반발했다.

이날 송전탑 공사 재개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철저한 보안 속에 이뤄졌다.

한전 측 시공업체도 무전기, 휴대전화로 주민들의 움직임과 상황을 살펴 게릴라식으로 ‘치고 빠지는’ 공사를 계속했다.

127∼129번 송전탑이 들어설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에서는 ‘765㎸ OUT!(밀양 765㎸ 고압 송전탑 공사 반대)’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공사 강행 저지에 나선 주민 20여명이 농성장 입구에 있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밧줄을 겹겹이 가로쳐 사람과 장비의 출입을 막았다.

대부분 70대∼90대인 고령의 주민 가운데 일부는 이날 새벽 5시께부터 시작한 농성이 버거운지 농성장 한복판에 누워 있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 대부분은 목소리를 높여 한전의 공사 강행을 비판했다.

농성장 곳곳에는 주민들이 나뭇가지에 설치한 동그란 모양의 밧줄이 긴장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한 주민은 “공사를 강행하면 (목매고) 죽으려고 우리가 직접 (나뭇가지에 밧줄을) 걸었다. 살려고 그랬다”고 전했다.

인분과 휘발유까지 준비한 주민들은 줄곧 농성장을 지키면서 삼삼오오 모여 송전탑 공사를 비판했다.

이들은 “언제라도 공사를 강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반드시 공사를 중단시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한전은 밀양지사에 송전선로 건설 특별대책본부를 설치하고 6개 송전탑 공사 현장의 상황과 주민 동향을 파악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영남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선 연내에 송전선로 공사가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한전은 강조했다.

연말까지 송전선로 공사를 마치지 못하면 액화천연가스(LNG) 등 대체 발전을 해야 해 하루에 47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한전은 주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 공사를 계속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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