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보훈처장 발언 정면 배치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5·18 단체와 시민사회단체, 정치권 등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공식 기념곡이 필요하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2일 오후 광주를 방문, 기자들과 만나 5·18 33주년 기념식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서를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처장은 다른 민주화운동 기념식과는 달리 5·18 기념식에서만 기념곡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다른 의견들이 있으니까 정부가 추진하기 쉽지 않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5·18 희생자의 한을 잘 드러내고 그동안 5·18 기념식에서 기념곡으로 불린 사실을 들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역 사회의 여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특히 민주화운동 기념행사의 주체인 정부 부처의 장이 “5·18 기념식은 광주 시민만의 행사가 아니고 정부의 기념행사다.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사실상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념곡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드러내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말 5·18 기념곡 제작 명목으로 예산 4천800만원을 편성, 기념곡 제정까지 추진 중이다.
광주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비 건립을 추진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곡가 김종률씨가 5·18 인권상 시상식에서 공연을 열기로 하는 등 곡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행보를 이어가는 것과는 대조적인 움직임이다.
이같은 정부의 방침에 5·18 관련자들과 광주 지역민들은 “정치적 의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념식 불참과 기념곡 제정 추진으로 지역 소외 여론까지 형성된 가운데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를 기대한 지역민들의 실망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김동철(광주 광산갑) 민주통합당 의원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의 역사와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광주 시민과 국민들의 마음 속에 이미 공식 기념노래로 자리 잡았다”며 “정부 주도로 별도의 기념곡을 만들겠다는 것은 5·18을 훼손하고자 하는 시도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5·18 단체의 한 관계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고된 여정을 품은 역사이자 5·18 정신을 되새기게 하는 상징”이라며 “유족의 한을 대변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으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올해 5·18 기념식 행사도 차질이 우려된다.
5·18 30주년 기념식 당시 기념곡 제정이 추진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념식에서 제외되면서 5·18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불참, 인근 구 묘역에서 별도로 기념식을 치르는 반쪽짜리 행사가 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90년대 각종 집회 시위 현장에서 불리다 민중의례의 제창곡으로 자리잡았다. 2004년 5·18 기념식에서 처음 연주됐으며, 이후 매년 기념식 때마다 참석자들이 다같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지만 2010년 기념식부터 제외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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