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신 취업” 학력지상주의에 도전하는 아이들
뿌리 깊은 학력 지상주의가 바뀌고 있다. 속도는 빠르지 않다. 하지만 ‘난공불락’(難攻不落)의 학력지상주의도 변화를 꾀하는 사회적 흐름에 조금씩 흔들리며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각 분야에서 학력보다 능력을 중시하려는 움직임도 만만찮다. 기업체에서는 나름대로 고교 출신을 채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이 진학하는 학교로 여겨졌던 특성화고 및 마이스터고가 주목을 받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25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수도전기공업고 실습실에서 2학년 전기에너지과 학생들이 직접 자동화 설비 장치를 제작하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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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연세대·고려대, 한국 사회의 최대 학벌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SKY’의 재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자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해 3월 고려대 경영학과 3년 김예슬씨가 대학을 “자격증 장사 브로커”라며 떠난 이래 서울대 사회학과 3년생,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년생도 대학 간판을 내던졌다. 평생 방패막이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예전과 사뭇 다르다.
특성화고의 지원율이 눈에 띄게 올랐다. 전남지역 특성화고 45개 학과의 올해 경쟁률은 지난해 1.1대1에서 1.4대1로 높아졌다. 순천공고는 384명 모집에 590명이 지원, 206명이 탈락했을 정도다. 또 취업률의 경우, 서울 노원구에 있는 경기기계공고는 지난해 24%에서 올해 51%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도 실업계 지원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운영하는 마이스터고 28개교의 인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치솟고 있다. 내년에 첫 졸업생이 될 마이스터고 학생들 가운데 77%는 이미 취업이 확정된 상태다. 1300여개 업체에서 학생 2803명을 예약해 놓은 것이다. ‘마이스터고=일자리 보장’으로 취업대란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특성화고를 선택하는 학생들의 꿈은 뚜렷하다. 지난달 서울시교육청에서 발표한 마이스터고 합격자 현황에 따르면 합격자 320명 가운데 중학교 내신성적 상위 20%인 학생이 전체 합격자의 36%인 114명을 차지했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은 사회에서 다른 길에 들어섰다. 물론 정부의 고졸 대책과 맞물려 기업들이 이미지 마케팅 차원에서 고졸 채용에 나섰다는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분명 ‘고졸’이라는 학력에 얽매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적성과 능력을 찾으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서울 송파구 일신여상 3학년 박성온(18)양은 지난 21일 산업은행으로부터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단국대 수시모집에 합격한 상태였지만 취업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산업은행이 정규직으로 입사, 대학에서 공부할 경우 학비 전액을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것도 박양의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 박양은 “취업 이후에도 대학은 언제든지 갈 수 있지 않겠나.”라면서 “일단 꿈을 위해 전진할 것”이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서울 성북구 동구마케팅고 3학년 황인지(18)양은 졸업하기도 전인 지난 8일부터 SC제일은행 자양동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고졸 출신들에게 취업 문호를 넓힌 조치가 특성화고의 부상과 함께 고졸 취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앞으로 문제는 고졸 채용이 한때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움직일 필요가 있다.
한편 25일 마감된 서울지역 특성화고 2012학년도 신입생 모집 결과 72개교 모두 정원을 넘었다. 지난해에 비해 지원자들의 내신성적이 2%포인트 이상 상승한 상위 60.22%를 기록하고, 전교 1등 학생들도 지원하는 등 고졸 채용 열풍이 실제 입시현장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은 2012학년도 특성화고 신입생 원서접수에서 72개교 1만 7270명 모집에 1만 9196명이 지원해 1.11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경쟁률 1.1대1과 같은 수준이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2011-11-2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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