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금 ‘뇌물고리’에 휴짓조각..검찰 첫 적발

정부 기금 ‘뇌물고리’에 휴짓조각..검찰 첫 적발

입력 2011-08-10 00:00
수정 2011-08-1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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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ㆍ브로커ㆍ사업자 ‘한통속’..나랏돈 860억 제돈 쓰듯

정부 기관이 운용하는 ‘기금 투자 비리’가 검찰 수사로 처음 실체를 드러냈다.

기금 운용 시스템에 담당 공무원과 금융 브로커, 사업시행자가 짜면 나랏돈을 내 돈처럼 빼쓸 수 있는 커다란 구멍이 확인됐다.

특히 담당 공무원은 ‘한 몫 챙기고 그만두겠다’는 막장 공직 가치관으로 뇌물을 받고 부실 사업 투자에 앞장섰다. 투자금 수백억원은 당연히 회수할 수 없게 됐다. 정부 정책 구현을 뒷받침해야 할 소중한 돈이 휴짓조각처럼 날아간 것이다.

10일 의정부지검에 따르면 창동역사㈜는 지하철 1ㆍ4호선 환승역인 창동역에 쇼핑몰을 갖춘 민자역사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3천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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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역사 조감도
창동역사 조감도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진흥개발기금(5천억원 규모)에서 160억원을, 산하기관인 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진흥기금(3천100억원 규모)에서 150억원을 각각 투자했다.

이 기금은 정부출연금과 운용 수익금이 주류다. 카지노사업자ㆍ국외여행자 납부금으로 조성되는 관광진흥개발기금과 공연장ㆍ박물관ㆍ미술관ㆍ사적지 관람료에 포함된 부가세, 한국방송광고공사 광고 수수료 등으로 조성되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이 더해져 만들어진다.

당시 창동역사㈜는 대출이자 연체로 계좌와 부동산 등을 압류당했고 당연히 사업은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정부 기관 기금이 버젓이 투자됐다. 담당 공무원-금융 브로커-사업시행사의 뇌물고리가 있어 가능했다.

검찰이 전하는 두 전직 담당 공무원의 행태는 한마디로 가관이다.

검찰은 관광진흥개발기금을 담당하던 계약직 직원 전모(37)씨와 문화예술진흥기금을 관리하던 팀장 황모(46)씨가 금융 브로커로부터 각각 뇌물 1억원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황씨는 10년간 기금을 관리하며 평소 한 몫 챙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공직 사회에 몸담고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전씨 또한 부유한 생활을 동경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 같다고 검찰은 전했다.

황씨는 범행 직후인 2008년 11월께, 전씨는 감사가 진행된 지난해 4월 각각 사표를 냈다.

이들에게 뇌물을 준 금융투자업체 부사장 박모(46)씨는 투자 유치 알선비 명목으로 창동역사㈜ 총괄본부장이자 대주주인 김모(46)씨로부터 14억원을 받아 챙겼다.

이 과정에서 정상적인 기금 투자 형식을 갖추기 위해 투자신탁회사 직원 맹모(37)씨를 매수해 펀드를 조성했다. 맹씨에게도 대가로 1억5천만원이 전달됐다.

사업시행사 관계자들은 회의록을 조작하는 짓까지 서슴지 않으며 대출을 보증했다.

이들의 기금 빼먹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방법으로 관광진흥개발기금은 주상복합단지개발사업에 100억원이, 문화예술진흥기금도 3개 개발사업에 450억원이 각각 더 투자됐다. 이를 대가로 전씨는 총 2억원, 황씨는 총 3억8천만원을 각각 뇌물로 받았다.

기금은 4개 개발사업에 총 860억원이 투자됐다. 박씨를 비롯한 금융투자업체 임직원 3명이 뇌물을 주고 알선했다.

박씨 등은 국내 유명 은행의 지점장과 부동산금융팀장 출신으로 부하 직원으로 있던 맹씨를 쉽게 매수했으며 전씨와 황씨의 경우 은행에서 근무할 당시부터 고객으로 관리해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씨는 창동역사㈜ 총괄본부장 김씨와 중학교 동창으로 투자 유치를 도왔다. 김씨는 투자받은 회삿돈 51억원을 횡령하고 대출금 20억원도 가로챘다.

창동역사 건설사업은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건설사가 철수하면서 지난해 10월 이후 공정률 30% 단계에서 중단됐다. 나머지 개발사업도 건설사 부도, 허가 지연 등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기금을 투자하면서 담보를 확보하지 않아 기금 860억원 대부분 회수하기 어려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천억원 규모의 기금을 소수의 비전문가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용해 결국 손실을 초래했다”며 “기금을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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