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소식통 “무료 의료서비스 의존하거나 교포단체 지원받기도”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귀순을 계기로 외국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이 새삼 재조명되는 상황에서 북한 외교관들은 본국에서는 특권층에 속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재국에서의 생활은 빈곤층과 비슷할 정도로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다.북한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19일 “북한 외교관들은 파견지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며 “유럽의 한 국가에 근무하는 북한 공관원들은 저소득층으로 신고해 해당국 국가의료보험에 가입, 무상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을 정도”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미주권에선 교포단체에 치과 치료와 독감 예방접종 등을 요청하는 한편, 이들로부터 의약품을 지원받고 있다”며 “동남아나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공관원들이 말라리아, 뎅기열 등에 시달려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건강이 악화해 귀국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 당국이 재정난을 겪으면서 국가를 대표해 해외 공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에 대한 지원도 줄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가 전례 없이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를 취함에 따라 북한 외교관들의 생활 형편은 더 나빠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월 22일 간암으로 현지에서 사망한 김춘국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의 경우 평소 건강검진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사가 간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이미 말기 상태로,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외무성 유럽국장을 지낸 김 대사는 북한의 엘리트 외교관으로, 그가 건강검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주재국에서 숨진 사건은 북한 외교관의 생활이 얼마나 열악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외교관의 건강관리는 외무성이 책임지지만, 예산 부족으로 지원이 열악해 외교관들이 주재국의 저가 의료서비스와 친북단체 지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며 “돈이 없어 건강검진을 포기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해외에 파견된 상사원이나 근로자의 경우 주재국 부담으로 의무적으로 정기 신체검사를 하고 감염성 질병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만, 외교관은 외교특권으로 신체검사 의무에서 면제돼 이마저도 받을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주재국 부임을 앞두고 평양에 있는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지만 대부분 요식행위인 데다 의사들이 허위 진단 결과를 발급해주는 경우도 많아 질병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관들이 주재국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환할 때도 간단한 에이즈(AIDS) 검사 정도만 받아 외국에서 감염된 다양한 질병을 파악하기 어렵다.
태영호 공사도 북한의 지원이 열악해 경제적으로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태 공사는 2013년 영국의 한 모임에서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오면 ‘혼잡 통행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야 한다”며 북한 외교관의 궁핍한 생활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고향에 있는 친구들은 내가 수영장 딸린 궁전에 사는 줄 알지만, 침실 2개짜리 아파트에서 한 달에 1천200파운드(약 175만원)로 산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또다른 대북 소식통은 “주영 북한대사관의 공사 월급은 450∼500파운드(60∼70만원) 정도밖에 안된다”며 “물가가 비싼 영국에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박봉”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친북단체 등을 통해 부족한 생활비를 융통했거나 일부 공금을 손을 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태 공사가 영국 명문대에 진학할 예정인 차남의 학비 걱정도 탈북 결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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