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낙마사태’ 이후 열흘 만에 이뤄져…사전검증 강화한듯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8일 새 정부 첫 국무총리 후보 지명은 그야말로 긴박하게 이뤄졌다.7일 오후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주요 인선 1차 발표를 예고했지만 이날 오전까지 인선 발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인수위 취재진 사이에서는 “비서실장 등 청와대 실장급만 발표한다” “총리도 발표한다”는 등의 예측만 무성했다.
이날 오전 8시께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본관에 마련된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 폭발물 탐지견 2마리가 나타나고, 경호인력이 회견장 입구를 정리하고 검색대를 설치하면서 “총리 발표가 확실하다”는 관측이 나왔다.
탐지견과 경호인력이 회견장에 나타난 것은 오전 10시로 예정된 주요 인선 발표를 박 당선인이 직접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총리 후보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박 당선인이 직접 후보자와 함께 회견장에 나타나 발표를 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오전 9시가 넘어서면서 박 당선인의 직접 발표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인수위 주변에서 돌았다.
박 당선인이 회견장에 들어올 예정이라면 회견장 안에 있는 취재진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 뒤 탐지견을 이용해 구석구석을 수색하고, 회견장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이 부분이 모두 생략됐기 때문이다.
결국 발표를 30여분을 앞두고 박 당선인이 총리 후보를 직접 발표할지를 고민하다가 이날 오전에서야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이 대신 발표하는 것으로 최종 정리했다는 인수위 관계자의 설명이 있었다.
또 이날 총리 후보뿐 아니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경호실장 내정자까지로 발표 범위가 정해졌다는 언급도 나왔다.
오전 10시가 되자 회견장에는 총리 후보자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 경호실장 내정자 없이 진 부위원장과 윤 대변인만 나타났다. 후보자 및 내정자 이름과 인선 이유를 발표하는 데는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처럼 박 당선인은 이번 주요 인선에서도 특유의 인사 스타일인 ‘철통보안’을 지키려 했지만, 이날만큼은 보안 기조가 어느 정도 깨졌다는 후문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박 당선인의 주요 인선은 발표될 때까지 누가 어느 보직에 임명됐는지 알기 어려웠지만, 이날은 발표 시점인 오전 10시 이전에 총리 후보로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지명됐다는 사실이 인수위에 퍼졌다.
정 총리 후보자도 발표 20여분 전 취재진과 전화통화에서 “총리 후보로 지명된 것이 사실이냐”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박 당선인은 정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기까지 후보에 대한 사전 검증을 그 어느 때보다 철저히 진행했다는 것이 인수위와 박 당선인 주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달 24일 새 정부 첫 총리 후보로 지명했던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부동산 투기 의혹과 두 아들의 병역 의혹 등에 휩싸이며 언론 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자 ‘검증 미비’ ‘나홀로 밀실 인선’ 등의 지적이 터져나왔다.
박 당선인은 보안 속에 인선을 진행한다는 원칙은 바꾸지 않으면서도 검증 인력과 방법을 더욱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간도 김 인수위원장의 총리 후보직 자진 사퇴 이후 열흘이나 걸렸다.
기존에는 후보자로부터 ‘검증 동의서’를 받은 뒤 최외출 전 대선캠프 기획조정특보와 이재만 보좌관 등을 통해 비공식적인 검증을 진행하면서 ‘구멍’이 생겼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번에는 현 정부의 검증 전문가까지 동원했다는 후문이다. 경찰청이나 국세청 등 관련 기관의 인사검증 전문가를 파견받아 후보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재산과 납세, 병역, 전과, 평판 등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박 당선인 측은 인사검증팀 존재나 면면이 공개될 경우, 인사청탁 등 부작용이 많을 것을 우려해 관련사실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이처럼 검증을 강화한 것은 ‘김용준 낙마’에 따른 충격도 있었지만 새 정부 출범까지 이제 2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 일정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명 이후 언론과 야당의 검증 과정에서 자질이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면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뿐만 아니라 장관 후보 청문회 일정도 줄줄이 늦춰질 수밖에 없고 이럴 경우 출범 이후에 각료를 임명해야 하는 불상사를 우려했다는 것이다.
인사검증팀은 특히 정 후보자에 대한 검증 관련 자료를 거의 다 수집한 상태여서 국회에 인사청문 요청도 곧바로 보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표 30분 뒤에 회견장에 서서 소감을 밝히고 언론과 질의응답을 진행한 정 총리 후보자도 “검증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서 제가 말하는 것이 제 소관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온갖 것을 다 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 대해 박 당선인이 지적한 대로 ‘신상털기’가 없지 않다고 의견을 피력하면서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뭐가 있지 않았나 생각까지 났다”며 “가만히 혼자 생각해보니 젖먹을 때부터 지은 죄가 다 생각나더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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