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견문기] 미아리 최고봉서 만난 노래비에 서린 ‘이별의 한’

[흥미진진 견문기] 미아리 최고봉서 만난 노래비에 서린 ‘이별의 한’

입력 2019-11-06 18:10
수정 2019-11-0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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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
‘미아리’라는 지명의 기원이 되기도 한 미아사는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번창과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을 견디고 새롭게 태어났으나 지금은 아파트 숲의 한가운데 콕 박혀서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일행은 삼양로를 따라 큰길로 나섰다. 길 맞은편에는 마카오의 성바울성당을 연상케 하는 ‘송천동성당’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1982년 분당한 성당은 전면의 엄숙한 외관도 멋있었지만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염수정 대주교가 집전한 뜻깊은 곳이었다.

완만한 오르막인 삼양로를 걷노라니 길가의 작은 해바라기들이 가을을 일깨워 줬고 햇살에 춤을 추는 노랑, 빨강 단풍이 정조대왕께서 광릉 능행을 떠나던 시기로 안내했다. 산세가 얼마나 수려했으면 말을 세우고 시조를 지으신 뒤 신하들에게도 시 짓기를 권했을까? 강영진 해설사는 아름다울 미(美)자를 쓰던 미아리의 산세가 아파트 단지들로 가려져 손톱만큼의 산도 구경할 수 없는 아쉬움을 옛 사진을 보여 주며 안타까워했다.

넓은 길을 걸었으나 좌우의 샛길들은 좁은 폭의 계단으로 가파른 오르막이었다가 내달리듯 내리 경사인 길들이 반복됐다. 대로 이면은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길들이 어지러워 얼마나 많은 언덕들이 있는지 가늠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직은 영업을 하고 있으나 ‘위해업소’로 지정돼 점차 사라져 가는 ‘미아리 텍사스’촌은 여성들의 고단한 삶을 떠올리게 했다. 길 맞은편을 바라보며 미아리 공동묘지의 사진과 ‘100호 주택’의 설명을 듣고 미아리의 최고봉인 미아리 구름다리에 올라섰다.

좌우로 내려다보이는 미아동과 길음동은 그 옛날 전쟁의 참혹함과 북으로 끌려가는 가족과의 이별의 한을 새긴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를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듯 현대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노래를 작곡하게 된 두 가지 이야기를 해설사에게 듣다 보니 몇 번이고 가슴속에서 주먹만 한 먹먹함이 솟아올랐다. 다섯 살 딸의 시신을 못 찾은 아비의 설움, 법조계나 학계, 언론계 등의 명망 있는 지도자를 지아비로 뒀다는 이유로 북으로 끌려가는 것을 한없이 바라만 봐야 했던 남겨진 가족들의 서러움.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만 애달픈 과거가 반복되지 않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훨씬 더 지혜로워져야 할 것이다.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

2019-11-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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