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PPT그룹 대표 “베를린장벽 무너지는 순간 기회가 열렸다”

독일PPT그룹 대표 “베를린장벽 무너지는 순간 기회가 열렸다”

입력 2015-10-15 09:18
수정 2015-10-1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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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서 사업 성공 “통일이 독일에 행운 가져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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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순간 기회가 열렸습니다.”

14일 포츠담 PPT 그룹 본사에서 연합뉴스 인터뷰에 응한 마티아스 군델(사진, 46) PPT 그룹 대표는 자신의 사업 성공담을 전하며 이같이 밝혔다.

군델은 가장 먼저 10학년 과정 학교(레알슐레)를 졸업하고 진학한 상급 직업학교에서 유급한 악몽을 떠올리며 말 보따리를 풀었다.

”폴크스바겐에 다니던 아버지는 제가 대학 공부를 마치고 좋은 직장을 갖기를 원하셨어요. 차마 유급했다는 말도 못하다가 나중에 들통이 난 이유죠. 나는 그 즈음부터 사실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학교 공부가 하기 싫기도 했었구요.(웃음)”

이후 부모의 배려로 영국에 4개월 간 머물고 돌아온 그는 그 기간을 자신감 회복기로 회고했다.

”테니스 강사 자격증이 있었기에 테니스를 가르치면서 영어를 익혔지요. 그 일을 하면서 슈테피 그라프 같은 유명한 선수도 보고 현지에서 상류층 인사들도 만날 기회가 생겼지요. 사업으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나 폴크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 자택으로 다시 돌아온 그에게 당장 뾰족한 수가 날 리는 없었다. 일단, 기업과 학교를 연계한 교육 코스를 밟아 경험을 쌓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평일에 학교에서 하루만 공부하고 나머지는 물류회사에서 사업을 익히는 과정이었습니다. 예전에 유급했던 전례와 달리, 이번에는 3년 코스를 2년 6개월 만에 끝냈지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다시 아비투어(대입시험)를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반대가 완강했었지요. 그러나 결국 제 뜻대로 됐습니다.”

기적의 역사로도 불리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 붕괴는 군델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사업 기회를 노리던 그가 테니스 강사로 다시 생업을 이어가던 차에 동독 사정에 밝은 이들로부터 동독에서 청소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당시 동독에는 서비스 개념이 없었어요. 기업 등 수요자들이 청소를 의뢰하려해도 6개월 전에 해야하는 등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의뢰 즉시 청소를 해주러 가겠다고 하니까 일리 있는 사업 아이템이 됐던 것이죠.”

그는 1990년 1월 볼프스부르크에 사업 근거를 두고 구동독 포츠담 지역으로 들어가 2월에 처음 수주 실적을 기록했다. 그해 10월 통일 이전 그가 포츠담에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먼 친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4만 마르크(2만 유로) 밑천을 들고 창문 청소로 시작한 비즈니스는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기세 좋게 뻗어나갔다. 1995년 가장 큰 수요처 회사가 파산하자 상당한 손해를 봤지만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창문 수준에 머물던 청소 사업 대상은 포츠담의 명소인 상수시 공원의 정원과 화학·제약회사 바이어(바이엘) 공장 같은 것들로 점차 확대됐다. 이들 기업과 기관을 포함해 모두 2천 명의 고객을 확보한 PPT는 초창기 20명가량이던 직원 수가 지금은 370명으로 늘었다.

1990년 24만1천 마르크 매출에 3만 5천 마르크 적자로 출발한 PPT는 이듬해 3만 1천 700 마르크 흑자로 돌아선 이래 지금은 연간 매출 800만 유로로 덩치가 커졌다.

”영업용 차가 70대나 됩니다. 그러다보니 자체 정비소를 두게 됐어요. 평소 이 정비소를 놀릴 수 없으니 정비사업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같은 업계 기업을 인수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원 수를 늘리고 덩치를 키우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애초 사업을 시작할 때 가졌던 생각대로 건전한 기업을 만들어가는 데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회사 매출의 80%가 인건비로 지출됩니다. 시간제 계약 노동자들이 또한 많은 것이 현실이고요.”

군델 씨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그날의 기억을 전하면서 독일의 통일 과정을 다시 한 번 자신의 개인사와 연결했다.

”1989년 11월 9일의 기억이 선명합니다. 식당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는데, 밖에 동독 사람들이 와 있는 겁니다. 알아보니 베르니거로데에서 찾아온 이들이더군요. 장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 집으로 이들을 데려가 더불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죠. 통일은 독일에 행운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헬무트 콜 총리가 책상을 탁 치며 ‘기회가 왔을 때 당장 해야한다’(단계적 통일론을 대신한 조기통일론)라고 결심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독일인들은 통일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들이 여럿 있지만 콜은 사이먼 래틀(베를린필하모니 수석지휘자) 같은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통독사(史)를 언급한 그에게, 그렇다면 독일이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헝가리의 오스트리아(최종 독일行) 국경 철조망 개방이나 헝가리 정부의 동독 난민 탈출 지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마따나 베를린장벽 붕괴에 이은 독일 통일은, 거창한 민주화 구호보다는 여행자유 같은 기본적 인권을 외치며 동독을 탈출하려던 이들의 행렬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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