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부경대 허성범 교수 30년간 연구...한국을 5대 미세조류종 보유국 이끌어

지난 2월에 정년퇴임 한 부경대학교 해양바이오 신소재학과 허성범(66, 사진) 교수가 주인공이다.
그는 요즘 자신의 연구 성과물을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해양과학연구원(KIOST)에 이관하기 위해 정리하느라 바쁘다.
1982년 부경대에 부임한 그는 국내 처음으로 미세조류인 플랑크톤 종(種) 분리에 도전, 성공한 이후 지금까지 무려 2419종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그 덕분에 미세조류 연구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5대 미세조류 종 보유국이 됐다.
플랑크톤은 바다 생물의 최하위 먹이로써 해양 생태계에 없어선 안 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생산함으로써 지구상에 생물이 살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허 교수는 애초 각종 어패류 양식에 필요한 먹이를 생산할 목적으로 미세조류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전복이나 멍게 등 무척추 바다생물은 플랑크톤만 먹고 살고, 물고기들도 사료를 먹을 만큼 자라기 전에는 플랑크톤을 먹이로 줘야 한다”며 “이를 확보하지 못하면 양식산업 자체가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양식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허 교수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미세조류의 중요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규조류에서는 석유를 대체할 바이오디젤을 생산할 수 있고, 각종 조류가 가진 생리물질은 의약품이나 화장품, 건강기능식품의 원료로 쓰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군사강국은 석유가 고갈될 때를 대비해 미세조류에서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는 대규모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허 교수는 전했다.
국내에서도 제약회사나 화장품회사 등이 허 교수가 운영하는 미세조류은행에서 각종 미세조류들을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크기가 2~3㎛(100만분의 1미터)에 불과한 미세조류의 종을 분리해내는 것은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채집한 바닷물이나 민물을 현미경에 올려놓고 정밀한 기구로 필요한 종을 분리하고 나서 항생제로 세균을 제거해야 한다.
또 1~4개월마다 새로운 배지로 옮겨서 배양해야 하므로 하나의 종을 분리해 내는 데 평균 6개월가량이나 걸린다.
허 교수는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매년 80여 종의 미세조류를 새로 분리해 냈다.
”우리 수산업 발전을 위해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므로 기꺼이 감내하겠다”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다.
부경대가 보유한 실습선 2척의 도움도 컸다고 그는 말했다.
”한 척은 남해와 동해, 다른 한 척은 원양에서 실습항해를 하면서 내가 부탁한 지점에서 바닷물을 채취해줘서 많은 미세조류 종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서해안과 내륙의 미세조류는 일일이 직접 찾아가서 물을 떠와서 분리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는 “남들은 고생이라고 말하지만 학자로서 우리 수산업과 해양과학 발전을 위해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며 스스로 정말 보람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처럼 그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미세조류 연구의 가치를 인정해 정부는 1995년에 ‘연구소재은행’으로 지정해 매년 허 교수의 연구를 지원해왔다.
그는 “동일한 연구과제, 그것도 동일 책임자에게 국가가 이처럼 장기간 지원을 한 것은 아마 우리나라에선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10㎖짜리 시험관 하나에 한 종씩 보관된 2천419종의 미세조류는 조만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으로 옮겨간다. 허 교수가 정년퇴임으로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더 나은 여건을 갖춘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교수 한 사람의 연구물이 고스란히 국가로 옮겨가 계속 이어지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부경대는 밝혔다. 허 교수는 18일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드는 기초는 쌓았으니 후학들이 고생 좀 덜하고 더 나은 연구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국가도 조급하게 성과를 재촉하지 말고 연구자를 믿고 기다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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