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포로수용소 관리, 아들은 인민군 포로

아버지는 포로수용소 관리, 아들은 인민군 포로

입력 2013-05-31 00:00
수정 2013-05-31 14:44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국립민속박물관·해금강테마박물관 ‘흥남에서 거제까지’ 특별전

한국전쟁 와중에 헤어진 아버지와 아들이 만났다. 재회한 곳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이때 아버지는 포로수용소 문관이었고, 아들은 북한 인민군 포로였다.

한국전쟁기인 1951년 4월17일, 거제포로수용소 문관이던 최중훈씨가 작성한 거제도 피난기.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한국전쟁기인 1951년 4월17일, 거제포로수용소 문관이던 최중훈씨가 작성한 거제도 피난기.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기구하기 짝이 없는 이 만남. 1951년 4월17일 아버지 최중훈 씨는 당시 열여덟살로 포로 신세인 아들 영철 씨를 찾아간다. 달걀과 돼지고기를 들고서 아들을 눈물로 면회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버지가 남긴 피난일기를 보면 지금은 작고한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을 함경도 청진에 남겨두고 남동생과 함께 흥남에서 배를 타고 월남했다가 나중에 거제포로수용소 문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이 무렵 아들 영철 씨는 인민군으로 입대했다가 철원 부근에서 탈영해 국군에 투항한다. 그런 다음 그가 이송돼 수감된 곳이 공교롭게도 거제포로수용소였다.

1950년 12월, 중공군 개입에 따라 연합군은 흥남철수작전을 전개한다. 이를 위한 마지막 배가 메러디스 빅토리호. 흥남을 떠난 이 배는 거제 장승포항에 입항했다.

당시 이 배에서 아이 5명이 태어났다. 그 중 막내라 해서 ‘김치5호’로 불리는 이경필 씨는 이런 인연으로 현재 거제 장승포동에 거주한다.

한국전쟁기인 1951년 4월17일, 거제포로수용소 문관이던 최중훈씨가 작성한 거제도 피난기.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한국전쟁기인 1951년 4월17일, 거제포로수용소 문관이던 최중훈씨가 작성한 거제도 피난기.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지방박물관 활성화 일환으로 거제 해금강테마박물관(관장 경명자·유천업)에서 특별기획전 ‘흥남에서 거제까지’를 다음달 4일부터 7월30일까지 공동 개최한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전쟁의 실상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기 이번 전시에서는 흥남철수작전과 그 마지막 배인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거제 장승포항에 입항한 역사적 사실(史實)에 근거하여 스토리를 꾸민다.

피난민들의 흥남 대탈출 과정과 ‘김치 파이브’ 이경필 씨의 생애사 자료, 이들 피난민의 거제도 정착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 등 유물과 자료 199점을 소개한다.

눈보라 휘날리는 북녘 흥남을 재현하고자 철모, 군화 밑창, 중공군 발싸개, 미군 찬합이 등장한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고전했다는 장진호 전투에서 흥남철수 작전까지의 기록을 담은 미국 NARA(국립문서기록관리청) 기록 영상과 사진도 나온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사진과 그 기록을 담은 엽서와 책, 승선 승무원 명단, 흥남탈출 때 가져온 고추장 단지와 도자기 제기, 선상 광경을 담은 동영상도 있다.

이런 간난 끝에 이들이 정착한 거제는 보리싹 푸른 남녘이었다.

바로 이 코너에 김치 파이브의 생애사 자료와 아들과 기구한 만남을 한 아버지. 거제 하풍면에 거주하는 1930년생 서풍일 씨가 어로 활동을 배우며 쓴 호미, 김후자(1934년생. 거제면) 씨가 피난촌에서 사용한 거제도 맹죽으로 만든 대나무 찬합을 모았다.

거제 포로수용소 당시 군의관들의 나눔과 희생의 정신을 엿보게 하는 의료도구, DDT 분무기, 약품도 찬조 출연하며, 피난민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를 보여주는 교육 교과서, 성적표, 교육사진도 있다.

흥남철수 작전을 다룬 영화 ‘내가 마지막 본 흥남’, 흥남철수 당시 교복을 입고 월남한 소녀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굳세어라 금순아’, 가수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가 담긴 앨범, LST(상륙 작전용 선박) 피난 체험을 바탕으로 쓰인 문학 작품도 나온다.

하지만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마지막 소원은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하는 북녘. 김치5호 이경필 씨를 비롯한 피난민들의 동영상, 피난민 정정원 씨가 지은 시 ‘불러보고 싶은 딸, 춘화에게’ 등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사법고시'의 부활...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한 공식석상에서 로스쿨 제도와 관련해 ”법조인 양성 루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제가 아니고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법고시 부활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2017년도에 폐지된 사법고시의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1. 부활하는 것이 맞다.
2. 부활돼서는 안된다.
3.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편정도가 적당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