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이란 이런 얼굴이어야지’ 美 식품 로고 퇴출

‘흑인이란 이런 얼굴이어야지’ 美 식품 로고 퇴출

임병선 기자
입력 2020-06-18 08:51
수정 2020-06-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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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라파엘의 스코티 마켓 진열대에 진열된 ‘앤트 제미마’ 팬케이크 시럽 병. 제조사 퀘이커 오츠는 131년 된 흑인 하녀 얼굴 브랜드를 퇴출하기로 결정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산라파엘 AFP 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라파엘의 스코티 마켓 진열대에 진열된 ‘앤트 제미마’ 팬케이크 시럽 병. 제조사 퀘이커 오츠는 131년 된 흑인 하녀 얼굴 브랜드를 퇴출하기로 결정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산라파엘 AFP 연합뉴스
‘흑인이라면 이렇게 말 잘 듣고 순종해야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오래 된 식품 브랜드 로고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얼굴과 이름을 빼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인종차별 철폐의 목소리가 드높은 데 따른 것이다.

NBC 방송은 17일(현지시간) 식품 대기업 퀘이커 오츠 컴퍼니(이하 퀘이커)가 131년 동안 로고로 써 온 팬케이크·시럽 브랜드 ‘앤트 제미마’를 퇴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퀘이커는 펩시콜라를 생산하는 펩시코의 자회사다. 퀘이커는 이 브랜드의 로고에 담긴 이미지가 인종주의 고정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이 이미지를 퇴출하고 브랜드 명칭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퀘이커는 “인종적 평등을 향해 진전을 이루기 위해 일하면서 우리의 다양한 브랜드가 우리의 가치를 반영하고 소비자의 기대에 부합하는지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앤트 제미마는 팬케이크 가루와 시럽, 아침식사 제품 브랜드다. 1889년 설립돼 올해로 131년째를 맞는데 이 브랜드의 로고는 인심 좋아 보이는 중년의 흑인 여성이다. 이 브랜드는 ‘늙은 제미마 이모’(Old Aunt Jemima)란 노래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1800년대 후반 백인들이 흑인으로 분장해 흑인 노래를 부르는 ‘민스트럴 쇼’에 등장하는 흑인 유모(mammy·매미) 캐릭터 ‘제미마 아줌마’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매미’는 당시 남부의 백인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살림을 하는 흑인 여자를 낮잡아 부르는 표현이었다.

퀘이커 오츠 컴퍼니의 홈페이지에는 이 회사 로고가 1890년 시작했고 실존 인물인 낸시 그린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린은 작가이자 요리사, 활동가 등으로 일했고 앤트 제미마의 모델로도 활동했다. 홈페이지에는 그린이 1834년 켄터키주의 노예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소개돼 있다.

퀘이커는 시대상의 변화를 반영해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로고의 그림을 변경해왔지만 이번에 아예 없애기로 해 새 로고와 브랜드 명칭은 가을쯤 나올 예정이다. 회사는 아울러 아프리카계 미국인 커뮤니티를 지원하기 위해 앞으로 5년 이상 5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제의 로고를 바꾸라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다. 흑인인 코넬대 교수 리체 리처드슨은 2015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이 브랜드의 로고가 “자신의 자녀는 소홀히 한 채 백인 주인들의 자녀를 열심히 양육하는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하인 매미”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안셀모의 세이프웨이 점포 진열된 쌀 가공업체 마스의 ‘엉클 벤스 라이스’ 제품들. 마스 역시 흑인 인종의 고정관념에 자리잡은 로고였다며 바꾸겠다고 공표했다. 산안셀모 AFP 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안셀모의 세이프웨이 점포 진열된 쌀 가공업체 마스의 ‘엉클 벤스 라이스’ 제품들. 마스 역시 흑인 인종의 고정관념에 자리잡은 로고였다며 바꾸겠다고 공표했다.
산안셀모 AFP 연합뉴스
가공된 쌀 등 식품을 제조하는 브랜드 ’엉클 벤스‘(Uncle Ben’s)를 소유한 마스도 이날 “지금이 바로 시각적 브랜드 정체성을 포함한 엉클 벤스의 브랜드를 진화시킬 때”라며 변화를 약속했다. 엉클 벤스는 1946년부터 나비넥타이를 맨 흑인 남성 노인의 이미지를 로고로 써왔다.

마스는 “변화가 정확히 어떤 것이고, 시점이 언제가 될지 우리도 아직 모르지만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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