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비대해진 美NSC’월권’·’비효율’ 도마에

몸집 비대해진 美NSC’월권’·’비효율’ 도마에

입력 2015-08-06 07:31
수정 2015-08-0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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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4배 늘어난 400명 규모…일선부처 업무 일일이 관여’장관도 모르게’ 쿠바 수교 비밀교섭…백악관 ‘구조조정’ 추진

“작년 12월 쿠바와의 비밀수교 교섭을 이끈 것은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리카르도 주니가 국가안보회의(NSC) 남미국장이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이 알게된 것은 협상이 상당부분 진척되고 나서였다”

미국 유력 워싱턴 포스트(WP)지가 5일(현지시간)자 신문 1면 머리기사에 실은 내용이다. 백악관 NSC로 과도한 힘이 쏠리면서 미국 대외정책을 지휘해온 국무부가 점차 ‘주변화’되고 있는 미국 정책결정과정의 변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막강해진 NSC의 위상을 보여주는 일차적 지표는 ‘규모’다. NSC의 모태는 1950년대초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국무·국방장관을 백악관으로 불러 외교·안보정책의 내부이견을 조정하던 회의다. 한국전쟁 참전도 1950년 6월27일 밤 트루먼 대통령이 소집한 이 회의에서 결정됐다.

’3인 회의’는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으면서 25명으로 몸집이 늘어났다. 이어 조지 HW. 부시 행정부(50명)와 빌 클린턴 행정부(100명)를 거치며 숫자가 정확히 두배씩 증가했다.

집권초 9·11 테러를 당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그 두배인 200명으로 늘렸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또다시 400명으로 조직을 확장시켰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NSC에서 근무했던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013년 백악관에 재입성한 직후 20년만에 무려 4배로 늘어난 NSC를 보고 크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NSC의 위세를 실감케 하는 대목은 사실 ‘규모’보다 ‘권한’이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하는 굵직한 현안에서부터 국무부와 국방부 등 일선 집행부처가 다뤄온 세부적 결정사항까지 NSC가 일일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이를 ‘미시관리’(micromanagement)라고 지칭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전만해도 NSC가 주도하는 정책결정 구조는 2단계로 돼있었다. 차관급이 참석하는 차석회의(Deputies Committee)와 장관급이 참석한 수석회의(Principals Committee)를 거친 사항이 대통령의 책상에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그 아래의 실무급 회의는 해당 사항을 직접 다루는 일선 부처의 고위관리가 주도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들어 이 실무급 회의까지 NSC가 관장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한 외교소식통은 “행정부 내부의 일거수 일투족을 거의 모두 NSC가 지켜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쿠바와의 비밀 수교교섭은 물론이고 이란 핵협상, 중국과의 기후변화 협상, 무역협상을 비롯해 오바마 대통령의 업적과 관련한 현안을 다루는데 있어 일선 집행부처의 고위관리들이 ‘소외’되는 것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연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몸집이 커진 NSC의 운영이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회의만 무수히 열릴 뿐, 결론은 제대로 내려지 않는 정책의 ‘병목현상’이 비일비재하다는 비판론이 나온다. 한 국방부 고위관리는 WP에 “잘해야 배변불량이고, 나쁘면 변비”라고 정책결정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2013년 7월 압델 파타 알시시가 무하마드 무르시 정권을 전복한 이후 이집트에 무기금수 조치를 취한 이후 이를 해제할 것이냐, 마느냐를 둘러싸고 수개월간 논쟁만 되풀이된 것이 단적인 예다. 이집트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해 무기금수를 해제하자는 쪽과 알시시 정권을 더 압박해야 한다는 쪽이 서로 맞서면서 NSC 회의는 그야말로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3월 금수해제를 직접 결정하면서 논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해 초 우크라이나 반군을 지원하는 문제를 놓고도 엇박자가 연출됐다. NSC에서는 당시 반군이 요청한 품목에 ‘전투용’이 많다는 이유로 담요와 음식을 제공하는 선에서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나마도 어떤 수송수단을 이용할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미 군용기로 수송할 경우 러시아 측을 ‘자극’할 것을 우려한 NSC 관리들은 결국 유럽에서 면허를 받은 트럭들을 이용하기로 결론을 냈다. 그러나 수주 뒤에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를 찾은 NSC 관리는 공항에 머물러있는 회색빛 C-130 미 군용기를 보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 군용기는 반군에 통신장비와 전투복을 전달하기 위해 와있었다.

우크라이나에 중무기를 제공할 것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1년이 넘도록 결론을 보지 못하고 있다. WP는 “백악관은 ‘예스’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노’라고도 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NSC 인력 400명 가운데 직접 현안을 다루는 이른바 정책담당자’(Policy People)는 절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관리와 인사, 기술지원, 상황실 당직자들로 구성돼있다. 정책 담당자들도 계선상의 담당자와 조정관이 기능·지역에 따라 복잡한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다. 그러다 보니 부처간의 이견을 조정한다는 본연의 취지는 오간데 없고 NSC 내부 조차 제대로 ‘교통정리’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무부와 국방부 등 일선 집행부처 고위관리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은 매우 크다는게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최근 공직을 떠난 고위관리는 “정책입안 단계부터 관여하지 못한다면 정책집행이 제대로 될리가 없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라며 “차관보와 부차관보가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정책이 될리 없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행정부 집권초기 국방장관을 맡았던 로버트 게이츠는 “NSC의 간섭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리언 패네타 전 국방장관도 “연설문을 미리 제출해야 하고 언론의 인터뷰 요청까지 백악관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고 술회했다.

라이스 국가보좌관은 행정부 내부의 비판론을 의식해 올들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가늘고, 기민하며, 정책지향적인 NSC’, ‘회의와 종이는 줄이되, 소통은 늘리는 NSC’가 그 슬로건이다. 7월 현재까지 전체 NSC 직원의 6% 가량을 감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조직운영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라고 WP는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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