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위해 숨진 순교자 추대해야” vs “IS가 원하는 ‘종교전쟁 구도’ 안돼”
지난 26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다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한 테러범에 희생된 자크 아멜(86) 신부를 순교자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이를 두고 아멜 신부를 순교자로 인정하면 테러범을 순교자로 떠받들며 테러가 ‘종교전쟁’이라고 주장하는 IS 논리에 휘말리는 것이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멜 신부를 순교자로 지정하자는 제안은 한 이탈리아 정치인이 처음으로 내놨다.
로베르토 마로니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주지사는 프랑스 성당 테러 직후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자크 아멜 신부는 신앙의 순교자”라며 “조속히 그를 ‘성(聖) 자크’로 추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탈리아어로 “즉각 성인(聖人)으로 추대하라”라는 뜻의 “산토 수비토”를 해시태그(#santosubito)로 붙였고, 이 해시태그와 마로니 주지사의 글은 SNS에서 지지를 받으며 급속히 퍼졌다.
성직자를 성인으로 추대하려면 해당 인물이 신앙을 위해 숨졌다는 바티칸 교황청의 공식 선언이 필요하다.
교황청 대변인은 성당 테러 사건을 접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터무니없는 폭력에 고통스러워 하고 경악했으며 희생된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 가톨릭 온라인 매체 가톨릭 온라인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멜 신부를 순교자로 지정하는 데 필요한 조사를 검토하도록 지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멜 신부를 순교자로 인정하면 IS가 원하는 종교전쟁 구도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종교 윤리 전문가인 폴 발렐리 영국 체스터 대학 방문교수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아멜 신부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은 극단주의 세력의 손에 놀아나는 경솔한 조치”라고 말했다.
발렐리 교수에 따르면 권력의 억압에 맞서 위험을 무릅쓰고 미사를 집전하다가 숨진 순교자로 추대된 신부들과 달리, 아멜 신부는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상에서 예기치 못한 테러를 만나 희생됐다.
이번 성당 테러는 무슬림이 가톨릭 신자를 살해한 종교전쟁이 아니라 단순히 악랄한 사람들이 벌인 병적인 행동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발렐리 교수는 “대테러 대응을 강화해야 하지만 테러가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에는 반대해야 한다”며 “비뚤어진 소수 극단세력의 병적인 행동이 성전(聖戰)과 순교자의 고난으로 왜곡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아멜 신부가 전통적인 순교자 조건을 충족하며 그를 순교자로 추대하자는 가톨릭계의 움직임은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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