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는 끝나지 않았다…우드워드, 닉슨 관련 새 폭로

‘워터게이트’는 끝나지 않았다…우드워드, 닉슨 관련 새 폭로

입력 2015-10-12 18:08
수정 2015-10-1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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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베트남 북폭 무용한줄 알고도 재선 위해 공습 지속”

“혼자 식사하고 기피인물 명단 만들어 백악관 출입막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1913∼1994) 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 폭격(북폭)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재선 승리를 위해 공습을 지속한 사실이 폭로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972년 미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던 워터게이트 빌딩 도청사건을 특종 보도, 닉슨을 사임에 이르게 한 워싱턴포스트(WP)의 대기자 밥 우드워드(72)가 13일 출간하는 새로운 저서 ‘대통령의 마지막 사람들(The Last of the President’s Men)’에서 드러났다.

WP에 따르면 우드워드는 닉슨 대통령 당시 H.R 홀드먼 비서실장의 보좌관이었던 알렉산더 버터필드(89)가 퇴임하면서 갖고 나온 문서들과 그와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이런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버터필드가 백악관을 나올 때 가져온 문건에는 닉슨 대통령이 재집권을 위해 북베트남 공습이 무용하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증거가 담겼다.

닉슨 대통령은 1972년 1월 3일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에게 직접 써 보낸 메모에서 “10년이나 라오스와 북베트남 상공을 완전 장악했는데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전략이나 공군에서 뭔가 잘못됐다”고 밝혔다. 이 메모는 베트남 일일 전투상황을 보고하는 백악관 기밀문서 위에 가로로 갈기듯 써 있었다.

이 메모를 쓰기 바로 전날, 닉슨 대통령은 CBS 방송의 유명 앵커 댄 래더와 가진 한 시간짜리 인터뷰에서 “(폭격의) 결과는 매우,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전에서 지상군을 철수시키고 공습으로 북베트남을 압박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수법으로 패배를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키신저는 “닉슨 대통령이 폭격을 더하라고 습관처럼 지시했다”며 베트남 북폭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높다고 자랑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우드워드는 또 대규모 공습이 군사적으로 별 효과는 없었지만 정치적으로 인기가 있었으며, 폭격이 닉슨의 재선을 위한 것이었다는 증거가 매우 많다는 버지니아대 밀러센터의 켄 휴즈 교수의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우드워드는 이어 버터필드·키신저 인터뷰와 새로 공개된 기밀문건을 토대로 닉슨 전 대통령 자신도 폭격이 군사적으로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국내에선 정치적 보상을 얻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버터필드는 닉슨 대통령의 기괴한 성격을 일화를 들어 소개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닉슨 대통령은 복수심이 많고 외롭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편집증 환자였다.

닉슨 대통령은 버터필드를 처음 만나 자기소개를 들었을 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고 헛기침을 하며 말을 더듬더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인이던 희극작가 폴 케예스가 연 파티에서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등장으로 침묵이 흐르고 아무도 악수를 청하거나 와인잔을 건네지 않자 패닉에 빠졌다. 닉슨 대통령은 “녹색 외투, 빨간 양탄자, 크리스마스 색깔…”이라고 더듬거린 뒤 백악관 집무실로 가버렸다.

버터필드는 “닉슨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으로 돌변하곤 했다”며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생각하고 계획하며 뭔가를 짜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닉슨 대통령이 혼자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고 설명했다. 닉슨 대통령은 구 정부청사에서 외투를 입은 채로 혼자 노트에 뭔가를 쓰며 저녁식사를 하곤 했다.

닉슨은 1969년 백악관에 인접한 대통령실 청사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성탄 인사를 하러 갔다가 일부가 자신을 대선에서 이긴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을 사무실에 놔둔 것을 보고 격노해 다른 대통령 사진을 모두 치우라고 명령했다.

버터필드가 작성한 ‘대통령실 청사 정화’라는 보고서에는 35개 사무실에 오직 닉슨 대통령의 사진만 거는 작업의 결과가 담겨 있다.

닉슨 대통령은 적으로 삼는 이들의 명단뿐만 아니라 반대자, 위험인물 명단까지 갖고 있었다.

그는 백악관에서 데릭 복 당시 하버드대 총장을 본 뒤 “저 개○○가 다시는 못 오도록 하라”며 “적 명단에 누가 있는지 모두 재확인하라”고 격분했다.

국빈만찬회가 열릴 때도 100여 명이 적힌 명단에서 이름을 하나하나 지워 결국 닉슨 대통령과 대화할 수 있는 이는 5명 정도에 불과했다.

버터필드는 닉슨 대통령이 에드워드 M. 케네디 당시 상원의원(민주·매사추세츠)을 감시할 첩자를 심으라고 명령하자 불법이라는 사실에 치를 떨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백악관 집무실의 책상, 벽난로 장식장 등지에도 닉슨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도청장치를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공화당 비밀 조직은 1974년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이 있던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다가 걸려 결국 사임했다.

버터필드는 닉슨이 백악관을 떠나는 날 많은 백악관 관리·직원들이 이스트룸에서 눈물을 쏟았다며 “슬프기도 했지만, 정의가 승리했기에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고 털어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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