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부럼/김성호 논설위원

[길섶에서] 부럼/김성호 논설위원

입력 2011-02-14 00:00
수정 201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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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음력 정월대보름 새벽은 늘 좋고도 싫었다. 호두며 땅콩, 잣을 깨물어 먹는 부럼의 흔치 않은 재미. 그런데 단잠을 깨워 부럼을 깨라는 어른들의 채근은 왜 그리 성가셨던지. 영문도 모른 채 첫입에 깨물어 마당에 던지는 호두, 땅콩은 아깝기만 했고. 어쨌든 정월 대보름에 이어지던 새벽의 의식은 유별난 기억이다.

따져 보니 우리 집에서 부럼 깨기가 멈춘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선친이 작고하신 게 계기였던가. 어머니는 꼬박꼬박 부럼을 챙겼지만 언제부터인가 깨물기의 의식은 실종됐다. 대보름 무렵 거리에 지천인 부럼들은 그저 절기를 알리는 것들로만 보아 넘겼고. 정월 대보름날의 호두, 땅콩은 그냥 호두, 땅콩은 아닐 터인데.

올해엔 노친(親)이 정월 대보름 오곡밥을 유난히 챙긴다. 벌써 며칠째 며느리에게 좋은 나물·오곡을 준비하라는 주문이 이어진다. 몸과 마음이 부쩍 약해진 노친의 성화가 예사롭지 않다. 왠지 잊혀졌던 정월 대보름의 기억도 새삼스럽고. 퇴근 길 오랜만에 부럼을 한번 듬뿍 사볼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11-02-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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