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자금성(紫禁城)/이춘규 논설위원

[씨줄날줄] 자금성(紫禁城)/이춘규 논설위원

입력 2011-05-13 00:00
수정 2011-05-13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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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자금성(紫禁城·현 고궁박물원). 조공국 조선의 수많은 사신들이 굴욕을 감내해야 했던 곳이다. ‘1625년 2월 27일까지 4개월 베이징에 머물렀던 조선 사신 대표는 차가운 길바닥에 엎드려 “소신의 나라가 오랑캐와 한 반열에 서기는 부끄럽사오니 청컨대 오문(정문) 안에서 조회하여지이다.”라고 청해 허락받는다. 천신만고 끝에 청의 고관들을 만난 뒤 다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사신 대표는 “‘대인들께선 적선하소서’라며 섬돌을 붙들고 애원한다.” 고 묘사될 정도다.

자금성에 들어갈 때마다 선조들의 아린 역사는 확인됐다. 안내인들은 조선고관 사신들도 성 입구 수백m 밖에서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자금성 입구부터 황제가 있는 곳까지는 무릎 꿇고 기어갔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 기억은 묘하다. 당시 유력 차기 대선주자를 동행취재할 때 자금성 안을 둘러봤는데 수백명의 중국 경호원들이 물샐틈없이 경호했다. 선조들의 슬펐던 모습과 겹쳐지면서 마음이 출렁거렸다.

자금성은 중국 명·청 왕조 500여년간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궁전. 성을 가득 메운 자색은 기쁨과 행복을 기원한다. 우주의 중심 북극성도 상징한다. 하늘의 궁전이 있는 곳 북극성. 하늘의 아들인 황제가 사는 궁전을 하늘을 상징하는 자색으로 장식했다. 1949년 마오쩌둥이 자금성 톈안먼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한 뒤 중국의 심장이 됐다. 자금성은 이후에야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자금성 내부엔 나무가 없다. 황제를 암살하려는 자객이나 도둑이 숨어들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여름에는 무덥다. 그러나 외세의 침탈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자금성 안에는 화재에 대비해 물을 담은 거대한 금속항아리들이 있는데, 그중 18개는 금도금이 돼 있었다. 1860년 자금성을 유린한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금을 싹싹 긁어가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다. 청 왕조 말기에 자금성이 연합군에 짓밟히면서 약탈에 무기력하게 됐던 것.

중국의 심장 자금성이 또 뚫렸다. 지난 8일 밤 자금성 내에 전시한 예술품 9점이 도난당했다. 금·은과 각종 보석으로 장식된 화장함 등 수십억원대이다. 전과자 스바이쿠(28)가 훔쳤다가 그제 공안 당국에 붙잡혔다. 폐쇄회로(CC)TV 3700개, 경보기 1600개를 비웃으며 높은 담과 여러 겹의 문을 통과했다. 내부자 공모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도난 예술품 일부가 수거됐지만, 수십만점의 문화재가 있는 자금성 경비는 더 강화될 것 같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2011-05-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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