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롯데 정서’ 해소 안간힘…한국 국적 거듭 강조
경영권을 두고 부모·형제간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1일 다시 한번 국민 앞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신 회장은 롯데그룹이 언론에 예고한 이날 오전 11시께 어두운 색 정장차림에 롯데배지를 달고 소공동 롯데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등장했다.
그는 일본에서 돌아오던 지난 3일에도 공항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을 만나 세 번 허리를 굽히고 국민에 사과의 뜻을 전한 바 있다.
굳은 표정으로 단상으로 올라간 신 회장은 준비해 온 대국민 사과문 원고를 읽기에 앞서 허리를 크게 굽히고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롯데그룹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게 항상 함께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최근 불미스러운 사태로 많은 심려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10초간 고개를 숙였다.
그는 “롯데에 대해 여러분께서 느끼신 실망과 우려는 모두 제 책임”이라면서 “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성 강화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재벌 총수 일가의 볼썽사나운 경영권 다툼에 더해 경영자가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본 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며 국민적 반감이 커지자 이를 불식하기 위해 도의적 반성의 모습부터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신 회장은 이어 한국롯데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의 기업공개 추진, 복잡하게 꼬인 순환출자 80% 이상의 연내 해소,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팀 출범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지주회사 전환에는 대략 7조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연구개발과 신규채용 같은 그룹의 투자활동 위축이 우려된다”며 부정적 측면을 언급해 국민 여론에 밀려 ‘울며 겨자먹기식’ 발표를 한 게 아니냐는 인상도 풍겼다.
신 회장은 “한국 매출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고 지난해 일본롯데에 대한 한국롯데의 배당금이 한국롯데 전체 영업이익의 1.1%에 불과하다”며 롯데의 국적 논란 해소에도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신 회장은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전에 조율된 기자들의 질문에만 답변을 하는 등 언론과 국민이 가진 의문점들을 말끔히 해소하기에는 한계를 보였다.
일본어 억양이 잔뜩 섞인 서툰 한국어 발음도 여전히 문제였다. 한국어 한마디 못한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은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는 달리, 신동빈 회장은 20분간의 회견을 모두 한국어로 소화했지만 일본식 억양과 발음은 숨기지 못했다.
특히 준비된 원고 없이 구두로만 이뤄진 질의 응답 과정에서 기자들이 “신 회장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기 어렵다”고 항의하자 롯데측은 따로 녹취를 풀어 원고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신 회장은 발표를 마친 후 단상 옆으로 나와 다시 한번 크게 고개를 숙였다.
신동빈 회장의 이날 사과는 지난달 27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신동빈 회장을 포함한 일본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하며 경영권 분쟁을 촉발한지 꼭 15일 만에 이뤄졌다.
대국민 사과 일정은 전날인 10일 기자들에게 통보됐고, 사과문은 11일 오전까지 신동빈 회장이 직접 참석한 독회를 거쳐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지난 5∼7일 외부일정을 모두 접고 집무실에 머물며 참모진들과 대책을 논의한 끝에 지난 주말 대국민 사과 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재계 서열 5위 기업을 이끄는 총수가 직접 대국민 사과라는 이례적 방식을 택할 경우 오히려 기존의 비판 내용을 기정사실화 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내부에서는 반대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임원들 사이에서도 전문 분야와 생각이 다른 만큼 100% 찬성은 없지 않았겠느냐”면서 “결국 회장님의 의사가 가장 중요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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