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 위해 11년째 ‘보은의 식탁’ 차리는 재미동포

참전용사 위해 11년째 ‘보은의 식탁’ 차리는 재미동포

입력 2015-06-23 07:25
수정 2015-06-23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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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라도 살아 계시면 계속 감사의 밥상 차려야죠”

“6·25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10년 동안 조촐하게 음식을 대접했는데, 올해는 일이 좀 커졌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카운티의 랭커스터시와 앤털로프밸리 지역에서 ‘크레이지 오토스’(Crazy Otto’s)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허진(54) 사장의 목소리는 작년보다 다급했다.

기자는 23일 전화를 걸어 “올해도 한국전쟁 발발일에 맞춰 참전용사를 초청해 11번째 식탁을 차리느냐?”고 물었고 그의 말투에서 뭔가 다른 일이 겹쳤음을 직감했다.

지금까지 음식을 대접해온 84명의 참전용사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대신 전달해 달라고 LA 총영사관이 허 사장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는 지난달 총영사관을 방문해 메달을 받았다.

이 메달 수여는 1975년부터 ‘유엔 참전용사 재방한 초청 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2011년부터 한국 방문이 힘든 용사들에게는 현지에서 공관을 통해 직접 전달하고 있다.

”우리 식당에서 메달을 수여한다고 하니 지역 상·하원의원, 주 상원의원, 시의원 등 5∼6명이 참석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한인사회에서 봉사를 자청한 인사들도 오겠다고 했고요. 125명을 받는 식당이 넘쳐날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허 사장이 더 걱정하는 것은 과연 몇 명의 참전용사가 식당을 찾아올지다. 초청장을 보냈는데 벌써 5명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이 왔고, 몇 분은 거동이 불편해 참석이 어렵다는 편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젠 연세들이 높아져서 매년 참석 용사들의 숫자가 줄어들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올해 못 오신 분들은 직접 찾아가 메달을 걸어 드릴 생각이에요.”

지난 10년간 아내 전은옥(52) 씨와 식탁을 차렸는데 올해는 친형 허영(75) 씨도 불렀다. 한국전쟁은 물론 월남전까지 참전한 형이 참전용사들의 아픔을 잘 보듬어 줄 것이라는 판단에서 허 사장이 ‘SOS’ 신호를 보낸 것이다.

25일 오후 4∼6시 크레이지 오토스에서 열리는 ‘11번째 보은의 식탁’ 행사에서는 한국 정부가 수여하는 ‘평화의 사도 메달’ 외에도 연방의원과 주 상원의원 등 정치인들이 감사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올해 식탁은 예년과 다를 게 없다. 참전용사들이 연로해 질긴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식단을 짰다. 소고기 요리인 ‘트라이 팁’과 ‘프라임 립’, 칠면조 요리, 감자를 으깬 ‘매시트포테이토’, 수프, 샐러드 등을 대접할 계획이다. 소화 능력을 고려해 한국 음식은 내놓지 않는다.

참전용사들을 위한 허 사장의 음식 대접은 2002년 시작됐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참전용사가 단골손님으로 많이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다.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번 돈을 지역 주민을 위해 쓰겠다는 차원에서 매년 6월 25일 참전용사들을 초청해온 것이다.

허 사장의 초대에 노병들의 참여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6년 전 지역신문에 허 사장과 미군 해병에 입대했다가 부상한 맏아들 허 현(미국명 리처드 허·26) 씨의 사연이 대서특필되면서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 참전용사의 참석이 늘어났다.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됐잖아요. 누구든 참전용사를 보면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겠어요. 저도 그냥 고마운 마음에서 한 끼를 대접하는 것뿐이에요. 이제 몇 분 안 남았어요. 앞으로 몇 년 지나면 이들이 모두 사라지겠죠. 한 명이라도 살아 계신다면 계속 ‘보은의 식탁’을 차릴 생각입니다.”

하루 식당 매출액을 참전용사들을 위해 아낌없이 쓰는 허 사장은 맏아들이 부상하고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이후에는 매주 화요일 크레이지 오토스 본점을 참전용사들의 아침식사와 모임 장소로 제공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 출신인 그는 인천전문대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에 이민했다.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하다 인수한 식당이 고객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고운 마음 씀씀이 덕분인지 그의 식당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본점과 6개 지점을 두고 있다. 2003년 LA카운티가 선정한 ‘가장 미국식 아침이 맛있는 식당’에 뽑혔고, ‘세계에서 가장 큰 오믈렛’을 만들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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