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풀린 금융권 빅데이터 활용
#사례 1. 30대 직장인인 A씨는 1000만원짜리 적금 만기를 앞두고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다시 적금을 넣자니 금리가 너무 떨어진 것 같고, 주식을 하자니 불안하다. 다음달에는 아이도 태어날 예정이다. A씨는 이 모든 고민을 온라인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 액수와 현재 통장 잔액, 지출 내역서 등을 입력하고 엔터 키를 누르자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인 ‘로보 어드바이저’가 금리 변동 상황과 실시간 금융 동향을 분석해 ‘처방전’(추천 포트폴리오)을 내놓았다. A씨는 자신의 신용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무료로 이 서비스를 제공받았다. 물론 주위 사람이 A씨임을 눈치챌 수 있는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분이 드러날 염려는 없었다.
빅데이터 활용이 발전되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을 풍경들이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이미 외국에서 시작된 서비스다. 이렇듯 다량의 고객 정보를 분석해 맞춤형 상품을 개발하는 빅데이터 연구가 국내 금융권에서도 한창이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비식별화된 개인 신용정보는 고객의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빅데이터 빗장을 풀면서 관련 서비스 발전 기대감을 키운다.
빅데이터 전문가들은 ‘매시업’(Mashup·정보나 콘텐츠 간의 결합으로 새로운 서비스 창출)이 가능해져야 진짜 핀테크(기술과 금융의 융합) 산업이 도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급여 이체 기록, 입금 내역, 카드 결제 기록 등 금융 정보를 분석하면 지역별, 연령대별, 직업별 마케팅이 가능한데 여기에 날씨 정보, 교통 정보, 의료 정보 등 비금융 정보까지 결합돼야 더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면서 “신용정보 활용이 자유로워진 만큼 시장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와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영환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도 “카드 거래 내역이나 대포통장 계좌 등 금융 정보와 함께 통신 데이터 등이 결합하면 금융 사기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미국 뉴욕주에서는 세금 관련 신고 정보와 납세자들의 월급 동향 등을 실시간 분석해 탈세와 부정 환급을 잡아 내는 탈세방지 시스템을 구축했다.
비금융권 정보와의 매시업에 한계가 있다는 회의적 시선도 있다. 이 교수는 “신용정보 활용에 대한 빗장은 풀렸지만, 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개인정보보호법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면서 “비식별 정보라 하더라도 몇 가지 정보가 결합하면 식별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시장 반응도 아직은 미온적이다. 임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서민들도 저렴하게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수익 모델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보험사 빅데이터 전문가는 “개인정보 문제가 매우 민감한 데다 아직은 개척 중인 분야여서 서로 경쟁사의 대응을 눈치 보는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빅데이터 활용 인프라 구축을 위한 신용정보집중기관 설립 문제도 논란거리다. 보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 연구위원은 “유출이 걱정된다고 정보 활용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이용 정보는 최대한 열어 두되 문제가 발생하면 사후 책임을 강하게 묻는 쪽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2015-06-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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